[김혜우의 나의 기타이야기]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1960년대부터 전성기 시작…관객과 교감하며 자유롭게 예술성 표출

  • 김혜우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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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9 07:58  |  수정 2023-06-09 08:00  |  발행일 2023-06-09 제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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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대중음악은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통속성과 함께 상업성을 동반하기에 예술성 음악과는 상대적인 성격의 음악이라는 것이 사전적 개념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예술성 음악의 속성을 계속 흡수해 왔고 이제 예술성은 대중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 100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1877년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유성기)는 대중음악을 산업화로 이끌었던 중요한 요소로써 대한제국(1897) 이전부터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였다. 그 이전의 음악들은 대중음악이라기보다는 민요나 가곡에 가까운 곡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923년 발매된 무반주곡 박채선, 이류색의 '이 풍진 세월'(희망가)이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곡은 특이하게도 미국의 작곡가 '제레미아 잉갈스'가 작곡한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을 편곡해서 우리말로 가사를 붙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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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우 싱어송라이터

1926년에는 다분히 염세적인 분위기의 '사의 찬미'가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당시의 축음기(유성기) 보급률과 비교할 때 천문학적 숫자인 10만장이 팔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 역시 가수 윤심덕이 우리말로 가사를 썼을 뿐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기악곡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편곡한 것이다.

1929년 발매된 가수 이정숙의 '낙화유수'는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노래다. 이들 노래 외에도 1920년대 음반 발매를 통해 유행했던 대중음악은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황성옛터)과 '강남제비' 그리고 신카나리아의 '뻐꾹새' 등 다수가 있지만 대부분이 서양이나 일본의 음악을 편곡한 노래들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1920년대의 '이 풍진 세월'(희망가)에서부터 오늘날 BTS의 'Dynamite'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레코딩 세션(음반 제작을 위한 연주)에 기타가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와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1920년대 초에는 반주 없이 노래만 녹음된 음반들도 있었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나일론(클래식)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 세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깁슨사의 '할로우바디'(재즈기타)도 세션에 사용되었으며 1950년대는 서양음악의 유입과 함께 그 유명한 펜더사의 '스트라토캐스터'와 깁슨사의 '레스 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의 전성기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는 일렉트릭 기타가 세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아졌다. 라이브무대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의 기타 연주는 톤의 느낌부터 다르다. 관객과 교감하며 자유롭게 예술성을 표출하는 연주와 절제와 정확도를 유지하며 예술성을 담아야 하는 연주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수들의 음반 제작에 비교적 많이 참여한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들을 일부 정리해봤다. 손목인 김희갑 신중현 강근식 최이철 이중산 김광석 최희선 한상원 함춘호 손무현 이병우 등이며, 이들 중 김광석은 가수 1천명의 음반 제작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그들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긴 기타의 선율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음반 속에서 살아 숨쉴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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