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현실성 없는 당정의 응급실 대책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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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7 06:59  |  수정 2023-06-07 07:02  |  발행일 2023-06-07 제26면
당정의 응급실 뺑뺑이 대책
현실성 떨어져 실효 미지수
정치적 대책에 그쳤단 지적
현장 상황 보완한 대책 필요
바람보다 햇살의 힘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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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응급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사건이 대구는 물론 용인에서도 이어지자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응급의료 긴급대책'을 내놨다. 구급차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지역 응급의료 상황실'(이하 상황실)을 만들고, 이곳에서 환자의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의 현황을 기초로 이송, 전원을 지휘·관제하고, 이를 통한 환자 이송의 경우 병원은 수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경증 환자의 이송·진료를 제한, 119 구급대는 경증 응급환자를 지역 응급 의료기관 이하로만 이송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화하도록 한 것도 그 결과다.

하지만 당정이 내놓은 대책만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워 보인다.

우선 상황실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건 의료 현장과 맞지 않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음에도 컨트롤 타워가 없어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는 받을 수 있는 병상과 응급한 환자를 볼 전문의가 마땅치 않다. 이런 현실에서 상황실 하나 생긴다고 없던 병상이 생기고, 모자라던 의료진이 충분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상황실 결정에 따라 무조건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것을 응급실 안에서 숨지는 것으로 장소만 바꾸는 것에 그칠 수 있다.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경증 환자 진료를 제한, 119구급대는 경증 응급환자를 지역 응급 의료기관 이하로만 이송하는 원칙도 비현실적이다. 응급환자가 119 구급대를 통해서만 응급실을 찾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6일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의료 현황통계'(2021)를 보면, 중증외상 환자의 응급실 내원 수단은 119구급차로 오는 경우가 9만8천989건으로 전체(19만4천119건)의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119 구급대가 아닌 수단으로 응급실을 찾고 있다. 특히 이 중 기타 자동차(6만9천37건), 걸어서 오는 경우(861건)도 전체의 36% 이상이다. 의료기관을 거쳐 오는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통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3명 중 1명꼴 이상인 스스로 찾아오는 환자는 이 대책으로는 실효성 있게 통제할 수 없다.

의료 현장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죄인처럼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소아청소년과 대란이 일어난 것처럼 응급의학과 기피도 심해져 응급실을 지킬 의료진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고, 이는 또다시 환자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대구지역 의료계는 어떤 강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나서 종합병원을 통째로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받았고, 자신의 병원은 비워도 당시 비상상황실이 있던 대구시청 10층 회의실은 가득 채웠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료계가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행인의 옷을 벗긴 건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햇살이 되는지는 정치가 아니라 전문가의 시각으로 현장을 조금만 관심 있게 둘러보면 나온다.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밝힌다고 손가락질해도 코로나19 당시 대구의료계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그 순간의 마음으로 미증유 사태의 맨 앞자리에서 섰다, 그들 스스로.

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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