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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
지난 6일 애플이 '비전 프로'라는 새로운 기계를 발표했다. MR나 VR 카테고리의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스페이셜 컴퓨팅(Spacial Computing)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과 디지털 세계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기계라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실제 공간에 디지털 콘텐츠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 전통적인 화면의 경계를 초월해 무한한 캔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체험해본 사람들은 연결성과 몰입감 측면에서 기존 메타의 퀘스트보다 진일보한 기계라고도 얘기했다. 비싼 가격이 흠이기는(약 456만원) 하지만, 죽어가는 메타버스를 살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기계라는 평가도 있다. 비전 프로 발표를 보면서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난 건 왜일까?
지난 5월26일 생명공학 스타트업 뉴럴 링크는 인간 대상 실험에 대해 FDA 승인을 받았음을 공지했다. 뉴럴 링크는 사람 뇌와 컴퓨터의 결합을 목표로 2016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회사이다. 2020년 돼지의 뇌에 초소형 칩을 심어 돼지 뇌의 후각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처리하는 것을 시연했고, 2021년 원숭이 뇌에 심은 컴퓨터 칩을 통해 생각만으로 원숭이가 비디오 게임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었다. 이 뉴럴 링크가 이제는 사람 대상으로 컴퓨터와의 결합 실험에 대해 승인을 받은 것이다. 예전에 주인공이 몸은 사이보그이지만 기억 이식을 통해 계속 살아가는 공각기동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그때 주인공이 던졌던 질문이 생각났다. "몸도 기억도 가짜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지난 4월20일 화성 이주를 목표로 만든 우주선 스타십의 시험 발사가 있었다. 발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륙 후 약 55초 만에 동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최대치에 이르는 '맥스 큐' 구간을 무리 없이 통과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스타십은 로켓(70m)과 우주선(50m)을 합친 높이가 120m로,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보냈던 새턴5 로켓보다 9m가 더 높고, 총중량은 4천900t(건조중량 300톤), 추력은 7천500t으로 최대 150t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최대 1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스타십을 이용, 화성에 100만명이 거주할 자급자족하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위 3가지 사건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융합의 시대임을 말해준다. 현실과 가상 세계의 융합, 인간과 기계의 융합, 지구와 우주의 융합이 그것이다. 앞으로 이런 융합적 사건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과 인식은 도전받고 변화될 것이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은 왜 필요한가?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TED에서 유명한 사이먼 시넥은 조직과 사람을 규정하는데 3가지 차원이 있다고 얘기했다. 하고 있는 일로 규정하거나(WHAT), 하는 방법으로 규정하거나(HOW), 마지막으로는 그 일을 왜 하는가(WHY)로 규정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WHAT과 HOW로 우리와 조직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정의와 경계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융합이 본격화될수록 사물에 대한 정의는 바뀌고, 사물 간 경계는 모호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나 방법이 아닐 것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의 목적에 대한 질문만이 우리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 한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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