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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는 게 남들보다 몇 년이나 늦었다. 대단한 신념이나 절약 정신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마지막으로 사용한 폴더폰이 너무 튼튼해 고장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폴더폰은 아주 오랜 기간 나와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산전수전 다 겪고도 건재했다. 기능이 단순해 배터리 소모와 고장 날 일이 적었던 걸까. 물론, 효율성 측면에서 스마트폰과 폴더폰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불편해도 어쩌랴. 기계(폴더폰)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휴대전화 성능의 한계로 '카○○○' 메신저 서비스도 한참이나 못 했다. 낡은 폴더폰이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남들 다 하는 메신저를 이용하지 못하니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어느새 세상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업무와 소통이 힘들도록 변해 있었다. 결국, 뒤늦게 폴더폰을 스마트폰으로 교체했다. 그때까지도 고장 나지 않은 폴더폰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교체하고 나니 이번에는 때마다 기종 업그레이드 요구가 이어졌다. 더 좋은 기종으로 꾸준히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스마트폰의 업그레이드된 신기술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구형 폰을 들고 다닌다는 핀잔을 들었으면서도 스마트폰 기종 교체 간격도 다른 지인들에 비해 무척 긴 편이었다. 기존에 쓰던 스마트폰이 고장이 나지 않았고 계속 쓸 만했기 때문이다. 제 수명을 다하지 않은 휴대전화 기계를 이런저런 이유로 교체해야 할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다 소모되지 못한 내 소모품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게 풍족하고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물건을 앞에 두고서는 한 번씩 고민에 빠진다. 스마트폰도, 자동차도, 다 읽은 종이책도 고민의 대상이다. 아직 쓰임이 다하지 않은 물건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게 맞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쿨'하지 못한 걸까.
어느 책에서 비슷한 고민이 담긴 문장을 발견했다. "하나의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물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신중한 관계 맺기라는 걸 알았다면, 어떤 물건을 구입하기 전 나와 그 물건의 미래를 아주 진지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면, 나는 거의 입지도 않고 가지고 있어도 설레지 않는 그 많은 옷을 그저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혹은 싸다는 이유로 쉽게 들일 수 있었을까?" '지구를 살리는 옷장'(박진영·신하나 저, 창비) 중에서.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패스트패션'(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션) 등의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인간의 소비 편의성은 높아지고 소비 주기는 짧아졌다. 물건의 생산과 소비, 폐기가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제 더 이상 쓸모없어지거나 또는 성능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한때 귀했던 물건이 쓰레기가 되는 일도 많아졌다.
사람이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듯 물건도 제각각 만들어진 이유가 있을 터. 정든 물건과 보다 의미 있게 이별하는 법은 없을까. 나에겐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겐 보물이 되는 방법이 있다. 물건에도 '끝'을 넘어 '새 시작'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위클리 기획 '끝은 또 다른 시작' 다섯 번째 이야기는 '물건의 새 가능성-플리마켓'이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5) 플리마켓 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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