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산X진미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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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06:42  |  수정 2023-07-06 07:03  |  발행일 2023-07-0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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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영기자〈정경부〉

산해진미(山海珍味). 산(山)과 바다(海)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을 뜻한다. 푸짐한 밥상을 지칭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다.

하지만 당분간 우리 밥상에 바다에서 나온 식품을 볼 수 있으려나 싶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전국적으로 오염된 어류를 먹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공포에 대구도 뒤숭숭하다. 대구 내 수산시장과 횟집은 벌써부터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소비자들은 오염수가 방류되기 전에 미리 천일염, 건어물 등 수산물을 구매하느라 여념이 없다. '소금 확보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유통업계에선 아직 두드러진 매출변화는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수산물 매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수산물 강박증'까지 생기고 있는 판국이다.

서민들의 이 같은 고통과는 무색하게 일본의 오염수 방류 준비는 착착 진행되는 모양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에 대해 검토한 결과, 일본의 바다 방류 계획이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월부터 오염수 방류를 늦어도 올여름 무렵에는 개시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지는 오래다. 늦어도 내달 안으로는 오염수 방류가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반도에는 4~5년 뒤에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 말대로라면 그때가 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심은 또 다르다. 아직도 동요한다.

소비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도 모자랄 판국에 정치권이 여론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 소비자의 심적 동요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쉼 없이 '말 공방전'만 일삼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소비자를 위한 행동이라지만 진정으로 우러나온 행동인지에 대해선 강한 의문이 든다. 이제는 오염수 방류가 방사능 테러인지, 정치 괴담인지 모르겠다는 비난도 나온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밥과 함께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게 한식의 특징이다. 산과 바다에서 나온 각종 재료로 만든 반찬들과 밥 한 그릇이면 '산해진미'라는 말도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번 일이 단순히 소비자의 우려로 남은 '해프닝'으로 끝날지 산해진미에서 '해'가 빠진 '산X진미'가 될지는 정부 당국 및 정치권의 향후 대처에 달렸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소비자들이 각자 식탁에서 행복한 미소로 수산물을 음미할 수 있는 상황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적절한 대처가 절실하다.
이남영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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