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구미 금오산, 복고풍 맵시의 빨간 캐빈…요새 같은 산세 속 기립한 절벽과 마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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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4 07:57  |  수정 2023-07-14 07:58  |  발행일 2023-07-14 제12면
[주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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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금오산의 케이블카는 1974년 9월에 운행을 시작했다. 길이는 805m 정도, 소요시간은 6분30초로 해운사 바로 앞까지 오른다.

장난감처럼 예쁜 케이블카가 운무로 희미해진 산정으로부터 녹음을 헤치며 능청스러울 만큼 유유히 다가온다. 복고적인 맵시의 빨간 캐빈은 오래된 모던보이 같은 모습이다. 그는 덜컹 소리를 내며 몸을 가볍게 두어 번 흔들더니 폼 나게 선다. 구미 금오산의 케이블카는 1974년 9월에 운행을 시작했다는데 서글픈 쇳기 하나 드러난 곳 없이 반짝이는 얼굴이다. 캐빈은 다시 한번 덜컹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자유로우면서도 고립적이고 정복당하면서도 의기양양하고 의연하면서도 두려움에 몸을 떤다.

케이블카서 내리면 해운사 천왕문
큰 은혜의 골짜기 대혜골 대혜폭포
해발 400m 선녀가 목욕하고 간 욕담

낭떠러지 암벽 쇠줄 잡고 간 도선굴
차가운 대기가 싸~악 하고 몸 스쳐

해운사 약사여래불 곁에 작은 석상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등신불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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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폭포. 금오산 정상부의 분지에서 시작된 물은 계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400m 지점에서 27m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케이블카 타고 설렁설렁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금오산의 정상부 분지에서 산 아래로 이어지는 저 계곡을 금오동천이라 부른다. 동천이란 산속의 골짜기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크고 깊은 금오동천은 곧 숲에 가려진다. 금오산성 외성의 대혜문 위를 날아간다. 내성은 정상부 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고려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 때 급하게 보수해 임란 후반기와 정유재란 때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외성은 이후 인조 때 쌓았다. 대혜문 벽체가 갓 지은 듯 깨끗해 보인다. 성문의 홍예 속으로 사라지는 까만 점들은 등산객들이다. 그들은 성안의 축축한 산길을 걸으며 난쟁이 바위손이나 고사리로 뒤덮인 오래된 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숲의 우듬지 위를 날아간다. 그들은 이 신기루와 같은 매혹의 찰나를 가지지 못한다.

안개 너머로 푸르스름하게 기립한 절벽이 보인다. 금오산은 높이가 977m인데 해발 700m 부근부터 급경사와 절벽으로 솟구쳤다가 꼭대기에서 평탄해진다. 산세가 아예 요새다. 고려 때는 산세의 아름다움이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림사가 있는 그 '숭산'이다.

금오산이 된 데에는 여러 전설이 있다. 황금빛 까마귀가 날았다고도 하고 빛을 내는 새를 따라가 보니 이 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도 한다. 금오(金烏)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상상의 새 삼족조(三足鳥)로 그 자체로 태양이나 해의 정기를 상징한다. 그만큼 이 산이 명산이라는 뜻일 게다. 금오산의 절벽을 태벽(苔壁)이라고 부른다. 이끼 벽. 그래서 여름에는 한기가 찬다. 도처의 이 희부윰한 공기는 태벽의 숨일지도 모르겠다. 절벽과 가까워졌다는 것은 도착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케이블카의 길이는 805m 정도다. 소요시간은 6분30초.

◆금오산 대혜폭포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해운사의 천왕문이 보인다. 바로 눈앞에 버티고 서 있어서 마치 일주문을 금방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소리가 들린다. 맑고 의로운 빗소리처럼 들려오는 계류의 소리다. 해운사를 앞에 두고 옆길로 샌다. 두 노신사가 두런두런 환담을 나누며 계곡을 오른다. 등이 젖은 외로운 등산객이 재빨리 앞질러 나간다.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신은 소년들이 조잘대며 떼 지어 내려간다. 약 10분쯤 올랐을까, 하늘이 동그랗게 열리면서 물소리가 커진다. 뇌가 광광 울린다. 폭포다. 이 폭포는 금오동천의 가운데 얼굴이다.

물은 금오산 정상 부근의 분지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400m 지점에서 27m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를 이룬다. 다시 아래로 흘러 남통천이 되고 금오산저수지에 모였다가 다시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 긴 물줄기가 구미의 유일한 수자원이라 한다. 그래서 금오동천의 다른 이름은 큰 은혜의 골짜기, 대혜골이고 폭포는 대혜폭포다. 외성문의 이름이 대혜문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치솟은 벼랑 끝에서 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수량이 많을 땐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폭포는 그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폭포 옆 암벽에 욕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연못의 이름이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곳이라 해서 욕담 또는 선녀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폭포 주변의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과 그의 문도들이 연중행사처럼 폭포를 찾아 목욕을 하고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데 지금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다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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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로 가는 벼랑길. 판석의 명문에 따르면 1937년 봄에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만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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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도선이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 부르며 고려시대에는 대혈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이 이곳으로 피란을 왔다고 한다.

◆벼랑의 도선굴, 벼랑 아래 해운사

폭포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오르는 벼랑길이 시작된다. 쇳덩어리처럼 카랑한 암벽의 길,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험한 길, 시야가 거침없이 트이고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인 길이 도선굴로 향한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인데 고려시대에는 큰 구멍이라는 뜻의 대혈로 불렸다 전해진다. 굴이 가까워지면 기온이 변한다. 차가운 대기가 싸악 하고 몸을 스치면 도선굴이다. 그리 깊지 않다.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이 이곳으로 피란을 왔다고 한다. 칡이나 등 넝쿨을 부여잡고 기어올랐다고 한다. 도선굴 벽 위에 명문이 새겨진 판석이 붙어 있다. 1937년 봄에 암벽의 돌을 깎고 쇠줄을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내가 오늘 걸은 벼랑길이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민족말살정책을 심화시켜 나가던 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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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 대웅전 뒤쪽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 곁에 자그마한 석상 하나가 있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다.

해운사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옛날에는 조금 더 아래쪽에 대혈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고려 말 야은 길재가 은거하며 대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혈사는 조선시대에 사라졌고 1925년에 철화라는 스님이 지금 자리에 절을 짓고 해운사라 했다 한다. 일제강점기 금오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웅전 뒤쪽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 곁에 자그마한 석상 하나가 있다. 웃는 듯, 무표정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모은 석상이다. 유래도 알 수 없는데 자꾸만 등신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도선굴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대단히 장대하다. 해운사의 지붕 선에서부터 깊은 계곡으로 모이는 우람한 산세를 따라 저 멀리 구미 시내까지 거침없이 열린다. 세상을 정면으로 대하고 있다는 이 차갑고 명징한 정신은 또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구미IC로 나간다. IC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금오산네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구미 금오산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해운사 앞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주차료는 승용차 1천500원, 케이블카는 13세 이상 대인 왕복 1만1천원, 편도는 6천원. 소인 왕복 6천원, 편도 4천원이다. 오전 9시부터 15분 단위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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