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수해 마을 주민들 "비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조마조마"···꾸준한 심리치료 필요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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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  수정 2023-07-21 07:56  |  발행일 2023-07-21 제9면
예천 수해 마을 주민들 비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조마조마···꾸준한 심리치료 필요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노인회관에 어르신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마을에서만 2명이 희생됐습니다. 저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일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유국진(73) 씨는 산사태 이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진평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홍화영(여·72)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홍 씨는 "밤이 되면 돌 굴러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사고 당일 일이 떠올라 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최근 집중 호우로 피해가 큰 예천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로 인해 본격적인 피해복구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이재민과 대피자, 재난 목격자 등을 위한 심리적인 지원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벌방리 노인회관에는 거실과 주방, 방 2개가 있다. 거실과 주방을 뺀 비좁은 방 하나에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대부분 60~70대 고령의 이재민들은 "밤만 되면 잠꼬대를 심하게 하거나 추가 산사태가 날까 봐 겁이 나 나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지난 17일부터 노인회관 앞에는 목욕 차량과 간이화장실이 마련됐다. 일부 가정에는 전기와 급수도 재개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얼굴이 밝지 않다. 꺼진 가로등, 사과바구니로 임시로 덮은 구멍 난 맨홀 등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최희열(42) 씨는 "음식과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어느 정도는 도와 드릴 수 있지만, 어르신들이 평생 처음 겪는 트라우마가 걱정이 된다"며 "특히 밤이 되면 자원봉사자나 군인, 공무원들이 모두 빠져 나가기 때문에 어르신들만 계시다 보니 더 우울해 하시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은풍면, 효자면 등 피해지역 노인회관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자가 노인회관에 머무르는 동안 폭염 주의, 산사태 우려, 폭우 예보 등에 대한 '긴급대피명령' 문자가 연신 휴대전화로 왔지만, 정작 어르신들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긴급 메시지의 자극적인 내용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천군보건소가 지난 16일부터 예천군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 거주시설 어르신부터 재난심리회복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재난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밤에만 계시는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남기 예천군보건소장은 "어르신들이 낮에 가재도구 청소 등을 위해 가셨다가 저녁에 돌아 오시기 때문에 주무시기 전에 상담을 하고 있는 실정 "이라며 "일부 가정은 전기와 급수가 공급되면서 집으로 돌아가 일일이 방문해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들 어르신들은 표시를 내지 않으시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우시는 분도 계시고, 하소연을 하시는 분 등 내적으로 트라우마를 겪으시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며 "그런 분들을하루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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