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충동적이지만 고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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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7  |  수정 2023-07-27 07:44  |  발행일 2023-07-27 제14면

[문화산책] 충동적이지만 고유한

일주일 전 목요일은 의도치 않은 출장이 있었고, 비 온 뒤 후덥지근한 날씨였고, 몸도 마음도 허기진 날이었다. 출장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는 했지만, 여전히 허한 마음은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종종 충동적으로 문화생활을 하곤 하는데, 그날은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열린 '아티스트 나우: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언어'를 찾아갔다.

평일 저녁 7시30분 클래식 공연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 부끄럽게도 홀 객석의 대부분이 차 있었다.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전한 첫 번째 단락은 슈만의 후기작 '숲의 정경 Op.82'였다. 여러 파트 중 담담한 선율의 '숲의 입구(Eintritt)'가 특히 좋았는데,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고즈넉한 벌판을 따라 걷다 작은 숲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어진 토크쇼에선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작곡가 슈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슈만의 예술세계는 실제 양극성 장애를 앓은 그의 삶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음악인 박종해는 슈만의 발가벗겨진 감정 그 자체가 인간적인 면모이기에 한동안 그에게 빠져있다고 전했다. 슈만의 감정과 그 감정을 받아들인 연주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두 번째 공연 '심포닉 에튀드 Op.13'을 감상했다. 어떤 선율은 구름 위를 맴도는 사랑처럼 보드라웠고, 어떤 선율은 곁에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광기 같았으며, 또 어떤 선율은 상실 앞에 버려진 허망한 슬픔 같기도 했다. 슈만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쓰인 곡들을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그만의 자유로운 언어로 해석해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사위가 어둑해졌을 즈음, 마지막 음을 던진 연주자와 무대를 향해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그에 화답하듯 세 번의 앙코르와 함께 공연은 막을 내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똑같은 연주자, 진행자, 그날의 관객 모두를 찾아 같은 공간에서 연주하더라도 완벽히 모사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 같은 것. 건반에서 튕기듯 일어나며 무대 뒤로 무심히 걸어 나가던 연주자의 피날레며, 두 시간을 함께하고 다 같이 박수갈채를 보내던 관객 사이의 라포르(Rapport)와 공연장의 습도, 온도, 냄새, 잔음까지 그 모든 것이 그날에 남아 있다.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허기진 마음이 찾아온다는 걸 안다. 그럴 때면 충동적이지만 고유한 순간을 찾아 나서게 된다. 어쩌면 그 감각적인 시간이 진한 흔적으로 남아 공허해진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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