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경산 환성사, 달이 없어도 물이 보이지 않아도…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水月觀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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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8 08:17  |  수정 2023-07-28 08:18  |  발행일 2023-07-28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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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에서 바라본 수월관. 수월관에서 보는 용연의 달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름도 물과 달을 보는 수월관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기로 작정하면 정말 그것만 보인다. 지붕을 들어내고 돌기둥만을 본다. 가운데 두 개의 기둥은 8각이고, 양옆의 기둥은 4각이다. 돌기둥은, 키가 좀 크고, 허리가 좀 두꺼울 뿐 거대하지 않았다. 기둥 사이는 생각보다 좁다. 환성사의 일주문. 원래 네 개의 오래된 돌기둥만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사진으로 본 그것은 거대했고 천문학적이었고 주술적이었다. 어느 사이 지붕이 얹어진 일주문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이 너른 땅의 좁은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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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보물이고 석탑은 대웅전 어칸과 현판을 가리지 않도록 왼쪽으로 살짝 비켜 서 있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사각의 작은 안마당은 꽃잎에 둘러싸인 꽃술처럼 폐쇄적이다. 고려시대의 것이라는 석탑은 근래에 보수했다.

◆환성사 일주문과 부도전의 부처님=돌기둥의 상부와 하부에는 일정한 홈이 파여 있다. 딱 맞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빈자리, 완벽한 대답을 요구하는 퍼즐의 빈칸 같던 홈에 재단된 붉은 각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돌기둥을 따라 오르면 화려한 다포의 육중한 지붕이 튼튼한 기둥 위에 걱정 없이 앉아있다. 이 일주문의 건축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웅전과 동시대인 17세기로 추정하고 있어서 대웅전의 건축양식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거대한 지붕을 머리에 인 이 21세기의 환성사 일주문은 애초에 원형이 없기에 지금의 모습이 지금부터의 원형이다. 자꾸만 바라보면, 만약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이었다면 오히려 균형적이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서서히 굳어진다. 그것은 지금부터의 세기를 살아나갈 준비를 끝낸 장군처럼 보인다. 섬세한 비늘 갑옷을 입고 긴 칼을 찬 결연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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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루의 노거수가 자리한 길을 따라 수월관으로 간다. 수월관은 팔작지붕에 다섯 칸짜리 다락집으로 누각을 겸한 절의 문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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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에 부도전이 자리한다. 부도들과 몇 기의 비석이 정렬되어 있고 한가운데에는 약사여래로 추정되는 돌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일주문 왼쪽으로 부도전이 보인다. 밝은 대지 위에 허리가 둥근 부도들이 일렬로 놓여 있고 몇 기의 비석이 그 앞에 정렬되어 있다. 부도전의 한가운데에는 약사여래로 추정되는 돌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부처님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방형의 탑신석은 근래의 것이 분명하다. 각 모서리 기둥인 우주를 세우고 각 면마다 석불좌상을 조각한 탑신석은 꽤나 공들여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 부처님을 위해 제작한 것은 아닌 듯하다. 결가부좌한 무릎이 허공으로 삐져나와 있다. 방형의 탑신석 아래에 놓여 있는 평평한 기단석이 원래 탑신석이 아니었을까. 자꾸만 까다롭게 지적질을 하는 것은, '핫핫, 나는 괜찮아' 하는 선량한 이웃 같은 부처님의 표정 때문이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 주변의 산이 절을 성처럼 둘러싸 한때 번창했던 절은 마치 진공의 공간같이 정적이 감돈다 모두의 손목을 끌고 와 보여주고 싶다

◆용연과 수월관=환성사는 신라 흥덕왕 10년인 835년에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주변의 산이 절을 성처럼 둘러싸고 있어 '고리 환(環)'자와 '성 성(城)'자를 써서 환성사라 했다고 전한다. 절은 너무나도 번창하여 조선 초 불교가 억압받던 때조차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절 앞에는 자라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고, 터만 남아있던 연못은 2004년에 새로이 조성되었다.

아주 오래전, 바위가 있는 한 쇠하지 않고 연못을 메우면 쇠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 조선시대 한 나이 든 주지는 귀찮음 병이 도져 자라의 목을 자른다. 그러자 연못의 물이 붉게 물들었고, 절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주지는 연못을 메우게 한다. 흙 한 삽을 퍼붓자 연못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슬피 울며 날아갔고, 마지막 한 삽을 붓자 절이 불타기 시작했다. 결국 대웅전과 수월관(水月觀)만 남았으며 그 후 환성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고 한다. 용연가에서 수월관을 바라본다. 수면을 가득 메운 푸른 것들을 다 걷어내면 수월관이 물에 비칠까. 수월관은 아주 멀어 보인다. 멋을 낸 용연과 자라바위의 현현 같은 두 그루의 노거수가 자리한 길을 따라 수월관으로 간다. 일주문에서 수월관에 이르는 길은 모두의 손목을 잡아끌고 와 보여주고 싶은 햇빛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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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사 일주문. 각 기둥의 둘레는 240㎝다. 원래 네 개의 오래된 돌기둥만 남아 있던 것을 근래 대웅전의 건축 양식으로 복원했다.

◆환성사=수월관은 팔작지붕에 다섯 칸짜리 다락집으로 누각을 겸한 절의 문루다. 누하루를 통과해 마당에 오르면 좌우에 버섯 모양의 정료대가 서 있고 가운데로 석탑과 대웅전을 마주한다. 석탑은 대웅전 어칸과 현판을 가리지 않도록 왼쪽으로 살짝 비켜 서 있다. 왼쪽에는 심검당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스님들의 공부방인 듯한 당우가 있다. 대웅전은 보물이다. 환성사는 조선 인조 13년인 1635년 중건되었는데 대웅전도 이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법당 내부는 어둡고 열려 있는 문 속으로 부처님 아래의 수미단이 보인다. 촬영 금지라는 안내문이 또렷하다. 익룡과 비룡, 온갖 꽃들과 동물들을 본다. 연잎 아래서 노니는 한 쌍의 물고기, 연리지 꽃 속에서 아름다운 꼬리를 서로 교차하고 있는 암수 봉황, 정수리가 붉은 단정학(丹頂鶴) 한 쌍 등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의 조각에는 사랑과 장수 그리고 다산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다.

대웅전 앞에서 사위를 둘러본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사각의 작은 안마당은 꽃잎에 둘러싸인 꽃술처럼 폐쇄적이다. 마치 진공의 공간 같은 정적이 어금니처럼 꽉 물려 있다. 유교의 시대에 절은 왕실의 원당(願堂)이나 서원에 속한 사찰로 기능했었다. 환성사도 영천 임고서원의 속사였다가 1724년 하양향교로 이속되었다. 조선시대의 많은 절들이 서원의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데 어쩌면 숭유와 억불의 시대에 사찰이 소리 없이 숨 쉬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절들이 쇠퇴일로를 걸으면서 환성사도 방치되다시피 했고 근래에 이르러서야 불사를 조금씩 일으키고 있다. 심검당 뒤편 부지의 건물은 지금 공사 중이다.

신발을 벗고 수월관에 오른다. 이곳에서 보는 용연의 달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물과 달을 보는 수월관이다. 용연은 보이지 않는다. 너른 마루의 이 끝과 저 끝을 오가며 뒤꿈치를 번쩍번쩍 들어 보아도 용연은 보이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이 말은 천상병 시인이 한 말이고, 나는 시인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일주문 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모두의 손목을 잡아끌고 와 보여주고 싶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경부고속도로 경산IC에 내려 69번 도로를 타고 하양으로 가거나 대구에서 4번 국도를 타고 하양으로 간다. 경산시문화회관, 하양읍행정복지센터 쪽으로 들어가 문화로를 타고 직진, 하주초등 앞 문화로 끝에서 왼쪽 방향 무학로를 타고 계속 가면 된다. 군데군데 환성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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