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모기장

  • 배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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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31  |  수정 2023-07-31 08:09  |  발행일 2023-07-31 제14면

[문화산책] 모기장
배은정 (소설가)

장르를 불문하는 조선의 천재 학자 정약용도 어쩌지 못한 여름철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모기이다. 얼마나 꼴 보기 싫었으면 모기를 증오하는 시 '증문(憎蚊)'을 썼을까. 울 밑의 호랑이도 처마 끝의 뱀도 괜찮은데 모기만은 간담이 서늘하다고 했을까. 점잖은 선비의 이마에 울퉁불퉁 혹을 돋게 하고, 제 뺨을 제 손으로 치게 하는 모기. 호통을 치고 꾸짖어 보지만 다산도 모기 앞에서는 '혈식(血食)'의 대상일 뿐이다.

다산을 못살게 군 모기의 몇 대손쯤 되려나. 시대도 귀천도 가리지 않는 모기가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까. 손님치레로 몇 날 며칠 불면의 밤을 보내다 모기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 결국 사람은 모기장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공간은 손님에게 내주었다.

모기장에 얽힌 추억 하나 없는 이가 있을까. 방 안 네 귀퉁이에 모기장이 걸리면 삼 남매는 신이 났다. 여름밤에만 생기는 한정판 놀이방이었던 셈이다. 안 그래도 작은방이 더 협소해지니 누구 하나는 모기장 밖으로 밀려났다. 어머니는 밤새 아이들의 팔다리를 오므려 모기장 안으로 넣어주셨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모기보다 더 무서운 건 졸음이다.

소설가이면서 수필 쓰기를 즐겼던 이효석은 '모기장'이 '호개(好箇)의 제목'이라면서 동료 교수 부부의 일화를 소개한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한여름 밤. 관사의 모기장 속 부부를 엿보고 시시덕거린 제자들을 훈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으레 잊힐 뒷얘기를 빼도 박도 못 하게 활자화한 장본인은 이효석이다. 농밀하기로는 '금각사(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의 모기장만 한 것이 없다. 모기장의 흔들리는 모습을 묘사한 단락은 글쓰기 교본에도 자주 실리는 명장면이다.

모기는 숨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모기들이 실컷 배를 채우도록 '모기 보시'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즘 잘 팔린다는 접이식 모기장을 침대에 올려놓았다. 밥상 보 모양인데 사이즈만 컸다. 설치가 간편한 원터치인데 접혀서 내려앉는 것도 금방이었다. 잠결에 잘못 건드리면 그물망에 포획된 짐승 꼴이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숨을 안 쉴 수는 없고 잠도 자야 하니, 밥상 보 아래 자반고등어처럼 모기장에 가만히 몸을 누일 수밖에.

배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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