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립의 즐거움

  •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 |
  • 입력 2023-08-01  |  수정 2023-08-01 08:20  |  발행일 2023-08-01 제17면

[문화산책] 고립의 즐거움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고립(孤立)'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홀로 따로 떨어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인간관계에 참여하지 못하여 소외되어 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고립, 타의에 의한 고립은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창의력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고립'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에게 정신적 괴로움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친 정보들과 사회적 관계(SNS)로 인한 '피로함'과 '상대적 상실감'이다. 우리는 '자발적 고립'을 통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하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하고 싶은지 긍정적 삶에 대해 생각하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즉, 고립은 온전히 자아를 탐구하고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준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고립'은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고립'은 절실하였고, '고독, 고립'되기 쉽지 않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만남을 자발적으로 피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나에게는 행운일지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발한 SNS 활동들로 소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던 30대에 나는 이러한 불안함을 2014년 '편함과 불편함' 시리즈 중 '정신적인 불편함'을 다룬 작품 'disturbing'을 발표하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가지고 다녀야 했던 수백 수천 개의 '선'(통신망)들이 '즐거움'과 동시에 생활의 '불편함'을 주고 있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를 통해 사람들과 공감하고 극복하려 했다. 그 작품이 나에게 원치 않은 고립의 시간을 주기도 하였지만, 수년이 지난 후 그 시간들 또한 나에게 필요한 시기였음을 느꼈다.

영국 처칠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거의 10년 동안 런던 외곽에서 유배와도 같은 고립의 시기를 보냈다. 그 시기를 보낸 후 처칠은 '고립되어 명상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적 다이너마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라고 하였다.

'자발적 고립'은 물론 '타의적 고립'이라 할지라도 혼자 즐길 수 있는 힘, '고독력'이 필요한 이 시대에 '고립'은 긍정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

박정현<설치미술작가>

기자 이미지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