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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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4  |  수정 2023-08-04 08:04  |  발행일 2023-08-04 제16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만진 소설가

1875년 8월4일 '아동문학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세상을 떠났다. 거의 150년가량 전의 일이다. 그래도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등 그가 남긴 걸작들은 변함없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는 1958∼61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모교 대구 계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김성도가 3년 이상의 인생을 바쳐 안데르센 동화들을 번역했다. 그는 그림 형제의 작품들도 우리글로 옮겼다.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김성도는 한국문학사에 남을 뛰어난 번역가이기도 하지만 그 본인 출중한 아동문학가였다. 그는 20세이던 1934년 '어린 음악대'를 작사, 작곡해 이름을 날렸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가지요"

2연은 더 흥미롭다. "쿵작작 쿵작작 주먹손으로/ 쿵작작 쿵작작 북을 칩니다/ 구경꾼은 모여 드는데/ 어른들은 하나 없지요'라고 고발(?)하니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어찌어찌 북은 구했지만 북채가 없어 아이들은 주먹으로 연주한다. 어른들이 제대로 갖춰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이 어린 음악대의 연주와 행진을 구경 올 리 없다.

번역가이자 작곡가, 그리고 아동문학가인 김성도는 '팔씨름' '대포와 꽃씨' 등 분단문학 작품도 남겼다. '팔씨름'에는 동쪽나라와 서쪽나라가, '대포와 꽃씨'에는 남쪽나라와 북쪽나라가 갈등하고 있다. 즉 '팔씨름'은 지구를 분할하고 있는 동서 대립을, '대포와 꽃씨'는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놓은 남북 분단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어른들이 일으켰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어린 음악대가 따따따 쿵작작 요란하게 연주 행렬을 펼쳐도 구경 오지 않는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들 이념의 전장에서 병사 노릇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털 하나 김의 2019년 발표작 'If you leave me'가 주목받고 있다. 'If you leave me'는 우리나라 전후 사회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소설은 세계대전 직후 독일 사회를 다룬 하인리히 뵐의 '열차는 정확했다'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연상하게 한다. 분단문학도 전쟁소설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 차세대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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