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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정<소설가> |
경주 황리단길에는 '읽는 약' 봉투에 책을 처방해 주는 서점이 있다. 어느 독립서점은 책 처방사가 있어 상담 후 필요한 책을 처방한다. 처방 약은 책 말고도 있다.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울 때 시급하게 나무를 본다는 김연수 소설가의 말을 인상 깊게 들었다. 허전한 날은 느티나무, 마음이 흔들리는 날은 금강소나무, 나약해지면 배롱나무, 교만해지려 할 때는 키 작은 향나무, 사는 게 재미없다면 바오바브나무….
내게는 참나무가 처방되었다. 소나무와 함께 우리 산에서 가장 흔한 수종이니 어디든 떠나면 될 터. '솔캠(나 홀로 캠핑)'을 검색해 간 캠핑장은 놀랍게도 혼자 온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인원수를 제한하고, 블루투스 스피커 사용은 금지되며, 하루 종일 매너 타임(정숙 시간)이 적용되는 깐깐함 때문인 듯했다. 여성 캠핑 애호가가 늘어나자 여성 전용이라 홍보하는 캠핑장이 더러 있지만 클릭해 보면 대부분 장비가 갖춰진 글램핑장이었다. 캠핑의 낭만과는 멀어 보이는 이곳에 예약자가 줄을 서다니 다들 자기만의 조용한 공간에 목말랐나 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초기작 '작업실'에는 혼자만의 방을 꿈꾸는 주부 작가가 나온다. 가족의 품 안에서 보호받지만 숱한 시간을 시달려야 했고, 따뜻한 가족의 정을 누렸지만 줄곧 얽매여 살았음을 깨달은 주인공. 한껏 큰마음을 먹고 월세를 구하지만 임대인의 지나친 간섭 탓에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는 데 실패한다.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세상에 나온 지 한 세기가 되도록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면이 콘크리트 벽이 아니면 또 어떤가. 야영객들은 나무 그늘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서로의 시선이 방해되지 않도록 의자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 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처방 받은 나무에 플러그를 꽂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볕뉘를 링거처럼 맞았다.배은정<소설가>

배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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