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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결혼이주여성들이 신희숙 대구민들레봉사단장(왼쪽 첫째) 집을 방문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엄마 아프지 마세요. 교회에 갈 때마다 엄마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대구 엄마' 신희숙 (62) 대구민들레봉사단장은 요즘 딸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육신의 통증을 이겨낸다. 신 단장의 외국인 딸은 100명이 넘는다. 캄보디아·베트남·필리핀 등 국적도 다양하다. 외국인 딸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등을 토닥이며 멘토가 되어준 신 단장을 '엄마'라고 부른다.
신 단장이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89년 대구 미군부대 인근에 사는 미혼모 가정의 혼혈아동 돌봄을 지원하면서다. 지금도 결혼이주여성과 북한 이탈 주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34년 동안 결혼이주여성의 '대구 엄마'였던 신 단장은 웃었던 날보다 울었던 날이 더 많았다고 회상한다. 추운 겨울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만 달랑 안고 쫓겨난 사연, 깻잎 하우스에서 농약을 살포하다 기절한 사연, 한국을 방문한 친정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비 마련으로 동분서주하던 일,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고통받은 사연, 가정폭력, 시부모와 문화적 갈등, 법원과 경찰서를 드나들던 일 등 끝이 없다.
베트남 출신의 팜베남(42·대구 동구)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정말 생각하기 싫다. 나 혼자의 삶도 힘들고 벅찬데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겪으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컸다. 낯선 곳에서의 출산은 너무나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엄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친 삶에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해 주셨어요. 안아주고 토닥거려 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린 시간도 많았습니다. '엄마' 하면서 전화하면 엄마는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한국 생활 20년인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 정착하고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분입니다."
베트남 출신의 이지영(41·대구 동구) 씨와 김미경(42·대구 동구) 씨도 신 단장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 씨는 "주변을 둘러봐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본국으로 돌아갈 입장도 아니었다. 하루빨리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늘 제 자리였는데, 엄마를 만났다"며 "친구도 소개해 주고 고향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밤, 낮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입덧이 심할 때도, 병원 진료 때도 엄마는 싫은 내색 없이 함께 해주셨다"라고 했다. 또 "한국 생활 16년 차 아이들도 예쁘게 성장하고 경제활동으로 이제는 제법 넉넉한 삶이다. 엄마 덕분에 '저도 이제 다 컸다'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의미) 그동안 엄마 너무 힘들게 했으니까 이제 아프지 말고 맛난 거 먹으러 다니자"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2013년 친정엄마가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 병원비 마련을 위해 친구네 깻잎 하우스에서 다문화 친구들이 깻잎을 따서 복지관, 관공서 등에 판매하고 후원단체에서 코레일 직원 기증 물품, 연예인 드라마 출연 소장품을 기증받아 판매하고 사회공헌기금 지원도 받을 수 있도록 엄마가 동분서주했다. 병원비 1천 400만원을 마련해 퇴원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10년을 더 살 수 있었던 사연의 감사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친정 엄마가) 대구 엄마한테 잘하라고 말씀하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팜베남씨와 이지영씨, 김미경씨는 한국으로 귀화했다.
신 단장의 집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친정'이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웃기 위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소하려고, 때론 고향 음식이 생각날 때도 부담 없이 찾아온다.
결혼 초기 힘들었던 사연을 서로 이야기할 때면 부둥켜안고 울기도 한다. 출국하려고 짐까지 챙겼는데 엄마가 책임진다고 출국을 막았던 사연도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한다. 외국인 딸들은 이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물론 한국 음식을 완벽하게 요리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신 단장은 "지금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동정의 시선이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동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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