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차차 우가포' 포토존. 붉은 등대가 프레임 속에 들어오고 그 뒤로 우가마을 전체와 금실정까지 조망된다. |
동해안로에서 우가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짧고 깊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고 둥근 항구의 모습에 볼이 부풀기도 전에 회색빛으로 선 막강한 옹벽에 움찔한다. 스르륵 내려서는 마지막 경사로에 어부가 미역을 말리고 있다. 어부도 미역도, 용케 미끄러지지 않는다. 항구는 텅 비었다. 배들은 모두 뭍으로 올라서 있다. 당연히 배가 드나들던 항구였지만 2015년 어촌체험마을이 되면서 조업을 하지 않는 듯하다. 배들 곁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휘청한다. 바람이 세다.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붙잡고 곧장 어부와 미역을 본다. 미끄러지지도 않고 휘청거리지도 않고 어쩜 저렇게도 잔잔할까. 그러고 보니 내항의 물결도 잔잔하다.
소가 누운 것 같은 지형이라 '牛家'
'아래·위' 마을·항구·등대 모두 2개
책 수만권 쌓인 듯한 해안 절벽 절경
어촌체험마을로 해녀의집 등 자리해
윗우가항은 배가 드나들던 항구였지만 2015년 어촌체험마을이 되면서 배들은 모두 뭍으로 옮겨졌다. |
◆우가마을
파도가 거칠다. 그예 벽을 넘어서지는 않을까 잠깐 생각한다. 파제벽 너머 가까운 바다에 갯바위들이 마치 방파제처럼 솟아있다. 질무섬, 고래아구리, 성냥암, 돈바우, 시내미(시할머니), 끝애 등 이름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파도는 그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부서져 흩날리는 바다가 온 몸을 덮친다. 안개 같기도 하고 먼지 같기도 하다. 집들은 바닷가의 좁은 땅에 발을 붙이고 일렬로 서 있다. 마을 뒷산인 우가산이 꽤나 급하게 바다로 내려서는 모양이다. 그 산자락을 밟고 동해안로가 지나가고 그 아래에 우가 갯마을이 자리한다. 우가(牛家)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것 같은 모습이라고 생긴 이름이다. 산의 이름도 마을에서 왔다. 산이 소가 누운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이 산에서 왔다고도 한다. 무엇이 먼저냐를 놓고 몹시 골똘해진다.
우가마을의 북쪽을 윗우가마을, 남쪽은 아랫우가마을이라 부른다. 항구도 2개다. 윗우가항에는 2011년 6월에 불을 밝힌 하얀 등대가 서 있고 아랫우가항에는 한 달 뒤 불을 켠 빨간 등대가 서 있다. 하얀 등대의 빛이 2㎞ 더 멀리 간다. 마을 앞바다에 갯바위가 많고 파도가 거세다 보니 돌미역 채취의 적지로 알려져 있고 문어, 전복, 소라 등 품질 좋은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봄에는 자연산 돌미역, 겨울에는 말똥성게가 명물이다. 해녀와 어부가 많았다는 우가마을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된 것은 한적하고 물이 맑아서 라고도 하고 어업활동에 한계가 생겨서 라고도 한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스노클링, 투명카누,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를 체험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횟집의 커다랗고 흐린 창 속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흘깃 보인다. 많다. 지금도 등대는 불을 켤까. 지금도 물질하는 해녀가 있을까. 그 사이 어부는 보이지 않고 미역만 환한 항구에 누워 있다.
우가마을의 절벽과 갯바위들은 수만 권의 책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굳어진 용암이 지상에 노출된 뒤 수많은 층으로 갈라졌다. |
◆윗우가항의 곶
윗우가항에 접한 해안절벽은 전망대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윗우가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람들은 워낭 모양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렇다. 전망대 맞은편 길가 담벼락에 벽화가 선명하다. 바닷속에서 물질하는 모습과 함께 '세상에 이런일이' '인간극장' '이름 고정우, 나이 16세, 키 185, 몸무게 비밀, 특이사항 국내 최연소 해남!'이라 적혀 있다. 10대 소년은 이제 20대 청년이 되었겠다.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고도 하고 가끔 고향을 찾아 물질을 한다고도 한다. 한 사내가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한다. 우가마을에는 사계절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차디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학꽁치 낚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절벽에 놓인 산책로를 따라가면 다시 해안절벽에 오른다. 작은 솔밭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귀여운 캠핑카들이 줄지어 있는 강동 오토캠핑장이 보인다. 솔밭에 돗자리를 펴고 남녀가 누웠다. 절벽의 가장자리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어 둥그런 창을 만든다. 이 소나무를 '이일송'이라 부른다. 하나가 되고 싶은 두 그루의 소나무다. 이일송의 동그라미 속에 부부나 정인이 서서 두 손으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받으면 두 사람이 동시에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고 부부 금실이 좋아진단다. 그래서 이 일대는 '금실정'이다. 이일송 앞 벤치에 부부가 앉아 있다. 더할 것도 없이 금실 좋아 보인다.
우가포 해안의 절벽은 수만 권의 책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우가 마을 앞 모든 갯바위들이 모두 그렇다. 채석강은 기나긴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지만 우가마을의 바위는 용암이 급격히 굳어진 화성암이다. 굳어진 용암은 지상에 노출된 뒤 수많은 층으로 갈라졌고 파도에 닳아 모서리가 부드러운 곡면을 이뤘다. 절벽도 바위도 모두 내륙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울산 땅이 끌어당기는 힘이 한반도에서 가장 강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책로에서 국가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개봄맞이꽃이 이곳에서 피어난다는 안내문을 본다.
절벽의 가장자리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어 둥그런 창을 만든다. 이들을 '이일송'이라 부른다. 하나가 되고 싶은 두 그루의 소나무다. |
◆아랫우가항의 곶
윗우가항과 아랫우가항은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항구는 역시 텅 비었는데 배들은 모두 윗우가항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옅어진 벽화들도 보인다. 2019년 TV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건후와 나은이가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항구 앞 갯바위지대 초입에 해녀의 집이 있다. 해녀의 집은 2009년도에 생겼다. 양복을 차려입고 하얀 장갑을 낀 사람들이 해녀의 집 앞에서 준공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기사로 보았다. 그때는 우가마을 해녀가 30명이었다고 한다. 또 언젠가는 15여 명, 또 언젠가는 10여 명이라고 했는데 지금 해녀의 집 벽면에는 해녀의 웃는 얼굴이 여덟이다. 그녀들에게 쉼터가 되어주었던 해녀의 집은 시간의 흐름만큼 낡았고 한동안 누구도 숨을 불어넣지 않은 것처럼 털썩거리는 천막 소리만 집안을 돌아다닌다.
갯바위 지대에 놓여있는 산책로를 따라간다. 파도가 높지만 제법 아무 생각이 없다. '우가차차 우가포' 포토존이 있다. 붉은 등대가 프레임 속에 들어오고 그 뒤로 우가마을 전체와 금실정까지 조망된다. 주변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울산 주민 720명이 이 해변, 저 동네를 다니며 모은 폐플라스틱 400㎏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바위들은 윗우가항의 절벽만큼이나 신비롭다. 책 한 권을 쏙 꺼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꿈쩍도 않는다. 바다가 부셔놓은 돌들은 각졌고 더러 날카롭고 드물게 둥글다. 오래 돌들을 만지다 가장 날카로운 돌에 손가락을 베이고서야 일어선다. 가장 높은 바위는 전망대다. 이곳이 '끝애'인가. 파도는 바위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하게 휘몰아치고 눈앞은 뿌옇다. 멀리 하얀 등대와 배들이 아슴아슴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간다. 나정교삼거리에서 내남, 울산 방향 우회전, 내남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오른쪽 부산, 울산 방면으로 간다. 외동교차로에서 우회전해 7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다 상방사거리에서 좌해전해 3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울산 정자항에 닿는다. 동해안로를 타고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강동오토캠핑장 지나 바로 우가항 입구다. 우가마을은 울산 북구의 '강동사랑길'에 속해 있다. 해안가와 도로와 산길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북쪽으로는 제전항, 남쪽으로는 당사항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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