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깊어지는 가을, 깊어가는 고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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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2 06:59  |  수정 2023-10-12 06:59  |  발행일 2023-10-12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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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족이 좋아하는 수박과 복숭아의 구매는 아예 포기했다.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수박은 그리 크지도 않은데 3만~4만원대이고 복숭아도 크기가 좀 크다 싶으면 한 상자에 4만원을 넘어섰다. 이들 과일 대신 오랜만에 샤인머스캣을 샀다. 작황 부진으로 대부분 과일의 가격이 올랐지만 샤인머스캣은 재배농가 증가로 가격이 하락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안 팔리는 것보단 반가운 이야기지만 다른 과일이 다 오르는데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 인기라는 소식이 샤인머스캣 재배농은 반갑지 않다. '귀족과일' 대접을 받았던 샤인머스캣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포도 캠벨과도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지난해 추석 이후 샤인머스캣의 위상은 그야말로 급전직하했다. 생산량이 많은 데다 조기 출하 등으로 맛이 떨어지면서 가격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출하해도 생산비를 못 건진다는 푸념마저 나온다.

가격이 높다 보니 너도나도 재배한 게 화근이었다. 오죽하면 샤인머스캣 주산지인 경산시, 영천시 등에서 샤인머스캣 품질관리단을 결성해 현장지도와 감독을 통한 품질 향상을 꾀한다고 할까. 품질 문제도 있지만 늘어난 재배면적에서 어떻게 생산량을 조절해 나갈지가 숙제다.

경북지역 곳곳에 출렁다리가 경쟁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관광객 유치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에서 앞다퉈 만들지만, 무분별한 난립으로 애초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지난 8월 영천에 전국에서 둘째로 긴 보현산 댐 출렁다리가 개통했다. 포항시 천마저수지 출렁다리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최근 구미시도 형곡전망대 출렁다리 설치 추진 방침을 밝혔다. 경북지역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출렁다리를 설치했거나 추진하다 보니 경북지역의 출렁다리가 전국의 20%나 돼 버렸다. 경북도에 따르면 전국의 출렁다리 수는 200여 개로 추산된다. 올 6월 말 기준, 경북에 설치된 출렁다리는 총 4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샤인머스캣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출렁다리를 설치하자, 관광콘텐츠의 평준화 우려가 나온다. 결국, 관광객 나눠먹기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통 초기에는 관광객이 몰리는 반짝 특수를 누리지만, 희소성 없는 평범한 관광자원으로 전락하기 쉽다.

귀족 포도라며 높은 몸값을 자랑한 샤인머스캣이 무너지는 데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출렁다리 또한 이러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샤인머스캣의 사례는 우리 산업, 정책을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자치단체가 어렵게 만든 사업을 말이 좋아 벤치마킹이지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베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지역, 어떤 것이 성공한다 싶으면 따라하기를 통해 차별화되지 못하고 평준화된 그저 그런 것이 돼 결국 모두 피해를 보는 일들이 허다했다. 출렁다리만이 아니다. 케이블카, 집라인, 모노레일 등 관광시설물 설치가 유행이다. 축제도 마찬가지다. 비슷비슷한 축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죽하면 '베끼기 경쟁'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샤인머스캣이 한창 맛 들어갈 시기이고, 좋은 가을볕 아래 출렁다리를 한 번쯤은 걷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나 너무 흔하다 보니 왠지 그리 눈길이 가지 않는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처럼 차별화된 콘텐츠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진다.

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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