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봉준호 등 K무비 거장들, 과거 시네필 세대

  •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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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7 08:13  |  수정 2023-12-12 10:15  |  발행일 2023-10-27 제14면
1970~80년대 영화광 '문화원 세대'
영화 상영 관객 운동의 큰 밑거름
이후 VHS 통해 시네마테크 즐겨
현재 매체 발달로 영화 접근성 높아져
다양한 플랫폼 통해 영화산업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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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영화는 길이, 장르, 형식 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영화는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관람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정해진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팬데믹과 OTT의 확산에 따라 제기되는 이른바 포스트-시네마 시대에는 그 관람문화가 일정 부분 변하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가장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영화관람 형태는 2시간 정도 길이의 영화와 멀티플렉스 영화관일 것이다. 말하자면 갖춰진 시설에서 소위 '극장용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관람의 일반적인 형태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흥행 영화를 보려고 길게 줄을 서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러한 관람문화에 작은 변화를 불러온 건 다름 아닌 영화광, 즉 시네필들이었다. '시네필(Cinephile)'은 영화 애호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cinema'(영화)와 'phile'('사랑한다'는 의미의 접미사)을 바탕으로 한 조어라고 정의되고 있다. 말 그대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등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바로 시네필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위의 네 명을 일컬어 "시네필 세대가 감독이 된 첫 세대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네마테크는 이러한 시네필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유럽에서의 시네마테크가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은 영화 필름을 구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일본영화는 수입금지 조치로 들여올 수조차 없었다.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은 영화를 VHS(비디오테이프)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비디오테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영화가 '불법' 비디오 복제를 통해 유통되고 상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당시 시네필들은 영화적 욕구를 해결했고, 그러면서 수많은 고전영화, 예술영화 등이 자연스레 한국에 소개되고 확산될 수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시네필 봉준호와 그가 함께 했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라는 시네클럽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90년대는 전국 각 지역에 여러 시네마테크 단체가 결성되었고, 대구에서도 '영화언덕' '시네마 하우스' '아메닉' 등 여러 시네마테크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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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로 대표되는 시네마테크 세대 이전에는 이른바 문화원 세대가 있었다. 70~80년대 프랑스 문화원, 독일 문화원을 통해 그 국가의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었었다. 정성일 평론가, 김홍준 감독, 정지영 감독 등이 대표적인 문화원 세대이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문화원 지하 1층에 있던 상영 공간 '살 르누아르'로 매일 같이 '등교'를 하며, 보고 싶어 죽을 만큼 애타게 그리웠던 영화들을 봤다고 한다. 그만큼 문화원은 이들에게 영화 해방구와 다름없었다. 훗날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한 관객 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다양한 '영화보기' 활동은 척박한 한국의 영화문화와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K-무비'를 있게 한 새로운 영화 세계를 열었고, 국제영화제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물론 지금은 '불법' 비디오 복제를 통해 외국의 예술영화나 고전영화를 보진 않는다. 그만큼 영화문화는 많이 바뀌었고, 비록 많지는 않지만 상설 시네마테크 극장도 존재한다. 또한 2000년대에는 관객의 다양한 영화에 대한 관람 욕구가 분출하면서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 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소위 문화 소외 지역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소도시에서는 예술영화는커녕 개봉하는 일반 상업영화조차 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0년부터 '작은영화관'으로 불리는 영화관이 이러한 지역에 설립되기 시작했다. 작은영화관은 영화관 부재 지역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군 단위에 조성한 상설 개봉극장으로 지역민의 문화향유권 확대를 위한 공공상영관을 말한다. 작은영화관은 극장 부재 지역으로 파악된 109개 시·군·구 중 64곳(59%)에 조성되어 있으며, 대구 인근에도 칠곡군 호이영화관, 고령군 대가야시네마, 영천시 별빛영화관, 성주군 별고을시네마 등이 존재한다. 작은영화관은 그 이름처럼 50~ 60석 규모의 2개관 정도로 구축된 '작은' 영화관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영화관람의 접근성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작은영화관들은 지역민에게 보다 다양한 영화문화를 제공하고자 '작은영화관 기획전'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문화의 질적 향상과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에 기여하며 의미 있는 역할도 수행해 오고 있다. 앞으로 작은영화관이 지역의 (영화)문화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영화활동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활동이 바로 상영과 관람이다. 결국 영화문화와 산업은 이러한 상영과 관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상영 주체가 한정된 영화만 상영한다면 결국 영화문화는 획일화되고 정체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했던 문화원, 시네마테크 세대들의 적극적인 관객 운동, 혹은 상영 운동이 한국 영화문화를 바꾸어 온 것처럼 새로운 영화와 영화문화의 도래, 또는 발전을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진 만큼 평범한 관객들도 영화 상영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커뮤니티 시네마' 활동이 바로 이러한 맥락 안에서 관객, 시민 중심의 영화문화 활동으로 펼쳐지고 있다. 시네마테크, 독립·예술영화관, 작은영화관, 커뮤니티 시네마 등 영화상영 주체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상영의 다양성이 영화의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영화문화와 산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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