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대구경북 해방공간 민중의 삶은 지금 우리와 맞닿아 있죠"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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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8 08:21  |  수정 2023-11-29 15:33  |  발행일 2023-11-08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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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는 옛 지역 신문을 교재 삼아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민중들의 삶을 연구하고 있다. 책과 신문, 시민 특강을 통해 박 교수가 들려주는 당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일요일은 쉽니다.' 영남일보 1947년 10월18일자에 보도된 기사다. 대구 달성동의 어느 기와집에 붙어 있는 글귀였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글을 써서 붙였을까. 해방 이태 뒤인 그해 5월 경북에는 콜레라가 번졌다. 그해 말까지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졸지에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해방 직후부터 '삼순구식(한 달 동안 아홉 번 밥을 먹는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민중의 삶은 비참했다.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구 10월항쟁은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해방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숨찼다.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희망은 희미했고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했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으려 했다. 달성동의 그 집은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꼭두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장봉사가 주인인 점집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 하루도 쉴 틈이 없자 '일요일은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던 것이다. 휴일 개념조차 흐릿했던 빈한한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장봉사가 건넨 부적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이의 저고리에 이름을 써서 세 번 절하면 돈을 벌고 병이 낫는다는 식의 기이한 처방에 감지덕지했다. 없는 살림에 적지 않은 복채를 내고 받은 대가였다.

해방공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한 장봉사 이야기는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가 펴낸 책 '조금 지난 뉴-쓰'(2019)에 '달성동 장봉사'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 책은 할머니 무릎베개로 옛이야기를 듣듯 '멀미 나는 부영뻐스' '70년 전의 스카이캐슬'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경북의 시간여행은 '오늘 보는 그제 뉴-쓰'(2023)로 이어졌다. 그는 앞서 '내가 네게 묻다'라는 인물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신문 지면 위를 누비며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숱한 이야기들을 되살려 맛깔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은 2017년 연재된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 여행'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박 교수의 흥미로운 시간여행 얘기를 들어봤다.

2017년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연재
2019년 '조금 지난 뉴-쓰' 책 시리즈 시작
올 4년 만에 후속여행 '오늘 보는 그제…'
'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란 궁금증
1945~50년 지면 누비며 숱한 얘기로 풀어
내년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특강

▶해방 후 삶이 힘들었던 탓에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았네요.

"대구경북에는 당시 점쟁이가 많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대구경북의 명물'이라는 말이 나돌았을까요. 불안한 삶의 탈출구로 점쟁이를 찾는 수요가 많으니 공급 역시 늘어난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한 현실의 또 다른 돌파구는 교육열로 나타났습니다. 중학교의 입학 문이 좁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수업이 성행했습니다. 음악·미술 같은 예능과목은 정규 수업에서 배제될 정도였습니다. 곧 수능이 치러지는데요, 그때도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려 했습니다. 1950년 대구지역 남자중학교의 졸업생은 750여 명이었는데 졸업생 열 중에 아홉은 서울의 대학을 선호했습니다. 당시 중학교는 고등학교 기간을 합친 6년제였습니다. 같은 해 여중 졸업생인 70여 명도 엇비슷했습니다. 다만 부모들의 반응이 달랐는데요. 대학 진학을 말리는 분위기였죠. 여학생들은 중학 졸업 나이가 대개 20세를 넘었습니다. 대학 4년을 지나면 나이가 너무 많아 혼기를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을 했죠."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해방공간 대구경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뭡니까.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였습니다. '우리'는 대구와 경북 사람이니까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겠지요. '어디'는 해방공간이었습니다. 해방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노정의 첫 단추를 끼운 시기입니다. 가장 가까운 과거죠. 명망가나 위정자의 삶보다는 민중들의 일상에 눈이 먼저 갔죠. 지금의 시민들 삶과 비슷할 테니까요. 새로이 입은 옷의 첫 단추가 어찌 끼워졌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해방과 미군정기,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억압과 전환의 시기에 대구경북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고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나아간다잖아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형이라는 점에서 해방공간을 선택한 의미가 있군요. 그렇더라도 굳이 신문 기사로 그 시기를 조명하려는 이유는.

"1949년 대구의 집값이 내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민생고를 견디다 못해 집을 담보로 고리대금업자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대구부내 열 중에 여덟 집은 빚에 쪼들렸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매물로 내놓는 집이 많았습니다. 매물은 늘어도 거래는 절벽이었습니다. 한 번 오른 집값이 내리지 않았던 탓이죠. 다수의 무주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해방 후 일본인이 살던 빈 적산가옥은 모리배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이미 여러 채를 소유한 상태였습니다. 이 같은 실상을 신문 기사는 낱낱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기사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대구는 신문의 도시였습니다. 해방된 그해 9월 진보 색채의 민성일보를 시작으로 영남일보, 대구시보, 부녀일보, 남선경제신문 등이 잇따라 창간했습니다. 신문은 사람들 일상을 담는 또 하나의 '광장' 역할을 했죠. 신문 기사를 징검다리 삼아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저도 '오늘 보는 그제 뉴-쓰'를 단숨에 읽었는데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 '극장 관객 실종사건' 등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특히 서문에 "시간은 뒤로도 흐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보는 그제 뉴-쓰'는 '조금 지난 뉴-쓰'에 이은 후속 여행이었는데요. 여행 시기는 1945~1950년입니다.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처럼 신문에 연재했거나 기사를 다듬어 정담(情談)으로 엮었습니다. 정담은 주로 과거를 묻는 이야기에 어울립니다. 이런 작업에는 늘 아쉬움이 따르는데요. 해방공간 대구경북에서 발행됐던 신문은 검색할 수 없습니다. 기사를 보려면 하나하나 찾아 눈이 아플 정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판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꽤 있고요. 여러 시기의 신문을 숙독해야 하나의 스토리 구성이 됩니다. 예상 외로 해방공간 민중의 일상 자료는 빈약한 편입니다. 정치적 격변기와 전쟁, 주류세력의 교체와도 연관이 있겠지요. 검색을 통한 신문 기사의 정보 활용은 지역의 역사 찾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죠. 첨단시대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웬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이런 해명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과거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말이죠. 과거와의 동행은 즐거움과 충전, 성찰을 한꺼번에 가져다주기도 하죠."

▶신문을 매개로 그 시절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의 언론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있는지요.

"1947년 3월25일 한밤중에 만경관 앞에서 영남일보 방수복 기자가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어요. 대구신문기자회는 5관구경찰청(경북경찰청)에 항의문을 전달하고 출입을 중단했죠. 그런데 며칠 뒤 부녀일보 최석채 편집국장이 경북경찰청에 구속됩니다. 이 사건을 권력이 저지른 테러로 규정해 연이틀 경찰 폭행을 비판하는 기사를 대서특필하자 보복이 뒤따른 것이죠. 경찰의 영남일보 기자 구타 사건 보도로 다른 신문의 편집국장이 구속된 것입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권력 비판이 침해당할 때는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기자들이 이른바 동업자 정신으로 뭉쳐 저항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뉴-쓰'시리즈 3편도 나오나요.

"내년에 '시리즈3'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대구경북의 진보성이나 역동성을 제대로 전달할지 고민은 됩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노래 제목으로는 그만이죠. 하지만 현실은 과거를 물어야 삶이 오만하지 않고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미래 세대라고 다를까요. 과거의 대구 이야기와 친해지도록 SNS 활용을 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책 속 '대구의 연인 금달네'에 관심을 보인 젊은 기획자가 있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웃음) 아, 중요한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요. 2024년 대구경북 시간여행 스타트는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봄학기 특강입니다."

박 교수 고향은 대구가 아니다. 대구 사람도 아닌데 대구경북 해방공간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옛 신문을 일일이 찾아 당시 시대상과 지역민의 삶을 재조명하는 건 박 교수가 유일하다. 굳이 그 이유를 물었다가 핀잔 같은 농담을 들었다. "이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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