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방시대와 지방언론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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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3 06:57  |  수정 2023-11-13 06:56  |  발행일 2023-11-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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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예전에 정부와 정치권의 예산낭비 취재를 위해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었다. 취재 목적은 아니었지만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미국의 언론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빴다. 특히 로컬 저널리즘의 위기가 심각했다. 경영난으로 줄줄이 문을 닫는 지역 신문사와 그에 따른 언론인의 대량 실직 사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국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카운티 중에 로컬신문이 없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가량 흐른 지금, 쇠락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신문광고 시장 축소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미국이 특히 심하다. 2000년대 초에 비해 최대 70%가량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신문산업이 온전할 리 없다. 급격히 위축되는 와중에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뉴욕 타임스 같은 대형 신문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했으나 지역신문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문을 닫은 지역신문사가 2천500개에 이른다. 전체 3분의 1 수준이다. 이로 인해 미국 3천140여 개 카운티 중 일간지가 있는 곳은 30%에 불과하다. 대부분 카운티에는 단 하나의 주간지만 있다. 심지어 주간지마저 사라진 카운티도 200곳이 넘는다. 인구기준으로 보면 미국인 20% 이상이 지역신문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온 용어가 '뉴스 사막화' 현상이다.

미국에서의 뉴스 사막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로 받아들인다. 지역신문이 사라지면 커뮤니티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지역주민의 정치 무관심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한다. 또 지방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부정부패 감시도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와 의회(하원)가 직접 나서 지역신문을 살리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억달러(2조원) 지원을 명시한 '지역언론 지속가능법'의 미국 상원통과가 관건이다. 이와 별도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주(州) 정부 차원의 지역언론 지원도 크게 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미국 20개 비영리단체가 지역언론에 5억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본고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제 미국 사회에서 지역언론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인프라로서 보호받는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국과 같은 '뉴스 사막화'는 없다. 지방(지역)언론이 탄탄해서가 아니다. 단지 국토가 좁아서다. 오히려 지방언론 상황은 미국보다 열악하다. 좁디좁은 시장에서 제살깎기 경쟁을 벌인 지 오래다. 특히 지방신문의 경우 상당수가 생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지방언론은 없다. 사실 애초부터 별 기대도 없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방언론에 대한 홀대가 갈수록 심하다. 현 정부는 지역신문발전기금조차 못마땅한 모양이다. 지난 2년간 20억원 줄인 것도 모자라 내년엔 10억원 더 삭감한 72억원만 준단다. 이렇게 되면 2021년 115억원이던 기금이 3년 새 40% 가까이 쪼그라든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은 지방언론의 가느다란 생명줄이다. 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지역사회 공익과 건전한 여론 조성에 쓰인다. 지방언론을 근간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게 무슨 지방시대인가.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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