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몽골 울란바토르② 광활한 초원의 바다에 빠져들다

  • 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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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4 08:05  |  수정 2023-12-11 16:01  |  발행일 2023-11-2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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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 국립공원의 명물 거북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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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치료한 의사' 이태준 선생의 묘소

박물관을 나와 자이승 기념탑을 찾았다. 울란바토르의 어디를 가더라도 큰 기대는 금물이다. 이곳도 기념탑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지대가 높아서 울란바토르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는 이만한 곳도 없다. 이 탑은 2차대전 승전기념탑으로 몽골과 소련의 전승을 기념하는 탑이다. 탑을 두른 벽에는 몽골과 소련군이 일본과 독일군을 무찌르는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 타일이 장식되어 있다.

탑에서 내려다본 울란바토르 시내는 고층 빌딩이 대거 늘어나 빌딩 숲이 되어 있었다. 제법 대도시로서의 위엄도 갖추었다. 초원 가운데 형성된 도시라는 점에서 사막 가운데 뜬금없이 솟아 있는 라스베이거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의술 펼치며 항일 독립자금 지원
몽골 확산 성병 치료 이태준 기념공원

유럽과 교류 역사 '은제나무 분수'
파괴 안된 대표적 유적 '복드칸 궁전'

시내 조금 벗어난 테를지 국립공원
오토바이 타고 양떼 모는 목동 눈길
푸른 초원 위 자연 조각품 거북바위
6천년 이어온 독수리 사냥 전통 체험


사실 남의 나라 승전기념탑을 보러 여기까지 올 일인가 싶기는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와봐야 하는 이유가 이 아래에 있다. 바로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태준이 누구인가.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그는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 학교에서 의술을 공부했다. 중국을 거쳐 몽골에 정착한 후 의열단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투사이기도 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일제는 도산 안창호를 배후로 지목하여 체포하고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때 안창호를 치료한 의사가 이태준이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이태준을 체포하려고 하자 1912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망명했고, 1914년에는 몽골로 와서 의술을 펼쳤다. 그는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설립하고, 당시 몽골인들의 70~80%가 감염됐던 성병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이태준의 치료로 완쾌된 몽골인들은 이태준을 '신인(神人)'이요,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이라 불렀다. 외몽골에서 독립한 복드 칸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몽골을 치료한 의사'로 존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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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드칸 궁전

한편, 몽골에 있던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가들의 숙박지요, 연락거점이었다. 그는 몽골에서 근대 의술을 펼치며 수입의 전부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했다. 뿐만 아니라 각지에 퍼져 있는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해 항일 독립자금 조달 등 외곽에서 폭넓은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러시아 레닌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1920년 레닌 정부가 준 금괴를 가지고 상해를 방문한 이태준은 북경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기도 했다. 다음 해 그는 일제와 손잡은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당한다. 지금은 사라진 이태준의 무덤은 몽골인들이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남산(南山) 건너편 구릉 한복판에 있었다고 한다.

2001년 몽골 정부는 몽골인을 치료해준 이태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부지를 제공하였고, 이태준의 모교인 연세의대 동창회가 비용을 제공하여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폐관 시간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행적을 담은 비가 철문 사이로 보였다. 그러나 이 기념공원 외에는 이태준의 정신을 살리는 사업이 지속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이곳에 대형병원을 지어주었다는 말이 들려 또 한 번 씁쓸했다. 여러 나라에서 몽골의 매장 자원에 눈독을 들이며 이런저런 공익 투자를 하고 있다는데, 그 일환인가 보았다. 우리 정부도 몽골에 '이태준 병원' 하나 정도는 지어주어 그의 뜻을 되살리고 기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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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 국립공원 독수리

자이승 기념탑 아래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12세기에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롬을 방문했던 수도사 루브룩의 여행기에 등장하는 '은제(銀製) 나무 분수'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분수는 시간에 맞춰 마유주, 포도주, 봉밀주 등 다섯 가지 음료가 나왔다고 한다. 파리 출신의 장인 기욤 부시에가 만든 기계식 분수로서 몽골제국이 일찍부터 유럽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당시 수도 카라코롬에도 복원되어 있는 이 분수가 자이승 아래 상가 광장에도 있다. 나팔을 부는 천사와 천사를 떠받치는 다섯 마리의 용이 달린 나무 모양이다. 용의 입으로 다섯 가지 음료가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지금은 분수 한가운데 장식으로 복원해 놓았는데, 마치 유럽의 어느 중세 도시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이국적인 모습이다. 정교한 조각과 조형미가 빼어나 당시의 기술과 솜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분수는 몽골 지폐 1만 투그릭의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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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기념탑 아래 상가광장에 있는 '은제나무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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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기념탑

이태준 기념공원 근처에는 또 울란바토르에 남아있는 유일한 칸의 궁전 복드 칸의 궁전이 있다. 1893년에 착공하여 10년 만에 완공한 이 궁전은 복드 칸이 살았던 4개의 거주지 가운데 하나로서, 파괴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역사 유적이다. 그래서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을 단 궁전의 정문은 복드 칸의 즉위를 기념하여 1912년부터 7년간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궁전은 총 20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불교국가답게 6개의 사원이 있다. 건물의 지붕 선이나 목재의 짜임 등을 보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양식 2층 건물로 된 생활공간은 실제 왕과 왕비가 거처했던 침실과 침대, 옥좌, 식당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고, 복드 칸이 별도로 수집한 박제동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복드 칸 궁전과 함께 혁명전쟁에서 살아남은 대표적 유적으로 간등사원도 있다. 17세기에 설립된 이 사원은 몽골의 대표 종교인 라마교의 총본산이다. 20세기 초 공산정권이 전국의 사원들을 폐사했을 때 박물관으로 사용하려고 남겨두었다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대외 홍보용으로 유지하게 된 사원이다. 이곳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27m 금불 입상이 있다. 현재는 불교대학을 운영해 승려를 양성하는 등 몽골 라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몽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활한 초원을 만날 수 있다. 울란바토르 여행의 필수 코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테를지 국립공원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몽골 전통 주거지 게르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70㎞ 정도 떨어져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은 몽골의 초원을 가장 가깝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테를지로 가는 길은 과거 내 기억과 많이 달랐다. 황량한 들판에 2차로의 거친 포장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길 양쪽에 주유소나 휴게소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제법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길가의 건물이 뜸해지면서 과거 기억 속에 있던 넓은 초원의 풍경이 나타났다.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는 게르와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목동과 양 떼까지, 이제야 과거 내 기억 속의 몽골 초원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가축을 모는 목동이 말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게 좀 달라졌다.

우리가 먼저 간 곳은 테를지 국립공원의 명물 거북 바위였다. 수천 년간의 풍화작용이 빚어낸 자연 조각품인 이 바위는 거북 몸통에 해당하는 큰 바위 위에 거북 머리같이 생긴 바위가 얹혀 있어서 영락없는 거북 형상이었다. 거북 바위를 보고 있노라니 주위에 이 거북이 사는 거대한 연못이 있을 것 같아 괜히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다 마주친 것이 깃발을 두른 돌무더기였다. 오워(Ovoo)라고 불리는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물로서, 우리의 서낭당 돌무더기처럼 흙이나 돌, 풀 등으로 쌓은 제단을 말한다. 오워는 몽골어로 '더미'를 뜻한다. 오워는 몽골인들에게는 이정표 역할을 해주며, 각종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오워를 만나면 주위를 세 바퀴 돌고 소원을 비는 것이 몽골인의 풍속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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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이곳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또 독수리 체험이다. 몽골 서북지역에 거주하는 카자흐 민족은 독수리를 잘 다루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민족은 6천여 년간 독수리를 이용해 사냥을 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베르쿠치'라 불리는 독수리 사냥꾼은 카자흐 남자들의 전통이며, 지금도 매년 '독수리 축제'를 연다. 테를지에는 이런 독수리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군데군데 있다. 팔에 장갑을 끼자 독수리를 올려준다.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 독수리가 날개를 펼쳐서 사진찍기 딱 좋은 포즈가 연출된다. 독수리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훈련된 순둥이 독수리 같긴 한데 날카로운 부리와 날개 펼친 덩치가 꽤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다음 간 곳은 승마 체험장이었다. 모름지기 몽골을 간다면 광활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는가. 그런데 몽골 말은 서부영화에서 보던 크고 멋진 말은 아니다. 제주도 조랑말보다 조금 큰 아담한 덩치여서 오히려 귀엽고 만만해 보였다. 관광객들에게 길든 말은 정해진 코스대로 다녔다. 질주 욕망을 채울 수는 없지만 몽골의 땅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푸르고 광활한 기운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체험이었다.(계속)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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