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9〉 영양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 정지윤,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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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2 07:56  |  수정 2023-12-08 15:25  |  발행일 2023-11-22 제18면
전통 중시하며 실학 교류 진취적 기상
조지훈 시인 생가와 詩 '고즈넉한 감성'
조선시대부터 문인 배출, 교육열 뛰어나
호은종택·월록서당·문필봉 등 자원 연계
문인마을 살린 '역사문화유산 박물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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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위치한 '주실마을' 전경. <인터넷뉴스부>
경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위치한 '주실마을'은 멀리서도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지난 2일 취재 차 찾은 주실마을은 노랗게 물든 가을 풍경과 한옥이 잘 어울렸다. 주실마을을 천천히 걷다 보면 절로 시 한 편이 떠오르는 듯했다. 마을 곳곳에 있는 조지훈 시인의 '시'도 가을 감성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 마을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영양 주실마을 숲'도 마을의 매력을 더해줬다.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우거져 있는 숲은 싱그러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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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주실마을에 대해 설명 중인 조찬영(왼쪽) 전 교육장, 조동언 노인회장. <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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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인터넷뉴스부>
◆유서 깊은 마을

주실마을 북쪽으로는 일월산이 있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배의 형상을 띤다. 산골등짝이 서로 맞닿아 이뤄진 마을이라고 해 '주실(注室)' 또는 '주곡(注谷)'이라 부른다. 마을은 호은공(壺隱公) 조전이 입향조인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다. 1519년 기묘사화로 축출된 조광조 집안이 이리저리 흩어졌다가 1630년쯤 조전이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주실마을은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진취적인' 성향을 지닌 곳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중시하고 보수적이었던 영남지역 다른 마을과는 달랐다. 일찍부터 실학을 접하고 개화사상을 받아들였다. 이에 영양지역 최초 교회인 '주곡교회'가 일월산 쪽에 자리했다. 그 결과 주실마을 출신 목사·신학 박사도 많다.

또 1900년대 초에는 마을 전체적으로 '단발'을 시행했다. 안동에서 단발을 처음 한 사람보다 4~5년 일찍 상투를 잘랐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창씨 개명'에 반대하며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았다.

'교육열'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영양지역 최초의 근대학교인 '영흥학교'에서 신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 결과 마을에서 교수가 많이 배출됐다. 대표적인 인물로 조동걸(국민대 역사학), 조동원(성균관대 역사학), 조동일(서울대 국문학), 조동택(경북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 등이 있다.

조찬영(75) 주곡리 전 교육장은 "1900년대 초부터 1945년까지 궁핍한 이 산골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53명, 대학에 간 사람도 11명이나 된다"면서 "조선시대 때부터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만큼 교육열이 뛰어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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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마을에 위치한 '지훈시공원' 가장 위에는 조지훈 시인의 동상이 서 있다.
◆조지훈 시인의 고향

주실마을은 조지훈(본명 조동탁, 1920~1968)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이다. 경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됐다. 호은종택은 조전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매를 날린 후 매가 앉은 자리에 집터를 잡은 곳이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소실됐다가 1963년 복구됐다. 생가는 'ㅁ자형 구조'로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양반가옥 형태를 띤다.

호은종택에서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단층의 목조 기와집인 '지훈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문학관에는 시인의 문학 작품과 삶·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있다. 시인이 쓴 주례사와 여러 곳에서 받은 감사장·위촉장·표창장 등 자료도 있다. 또 평소 썼던 문갑과 서랍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내부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연말까지 휴관한다.

'지훈시공원'도 마을에 있다. 공원에는 '승무' '낙화' '다부원에서' 등 27개의 시비가 설치돼 있다. 공원을 올라가는 길에 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시공원 가장 위에는 청동 조각상들과 함께 시인의 동상이 서 있다.

조동언(76) 주곡리 노인회장은 "주실마을은 학교 체험학습 등 일반 관광을 오는 경우도 많지만 연구 목적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면서 "문인, 교수들이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고 했다.

◆'역사문화유산형' 박물관

주실마을은 '역사문화유산형' 박물관으로 적절하다. 역사문화자원에는 호은종택, 월록서당, 주실마을 숲, 문필봉 등 다양한 자원이 있다. '문인 마을'이라는 특징을 살려 문학 관련 다양한 건물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 이미 '아름다운 한옥마을'이라고 정평이 난 만큼 해당 특징을 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불어 '조지훈의 지조가 남은 마을'이라는 특징을 살린 방향으로 박물관을 구성할 수도 있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 지훈문학관, 지훈시공원 등을 연결해 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도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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