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서울민국'의 저출산 재앙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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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1 06:54  |  수정 2023-12-11 06:55  |  발행일 2023-12-1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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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우리나라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지난해보다 0.1명이나 줄었다. 간당간당하다. 0.6명대로 내려갈 날도 멀지 않았다. 인구 감소세도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디서 멈출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 사회는 무덤덤해졌다. 아직 숫자로만 접하는 정도여서 그럴까. 정부와 정치권도 무관심하다. 당장 눈앞의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되레 해외에서 더 걱정이다. 지난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한 편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지만 내용이 더 자극적이다. 이 칼럼을 쓴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인구 감소가 중세 유럽 흑사병 창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의 주장이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14세기 흑사병은 인류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유럽 일대를 휩쓸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됐고, 심지어 고려까지 전파돼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학계에선 흑사병으로 당시 세계 인구(4억5천만명)의 22%가량인 1억명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한다. 다우서트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흑사병을 거론했을 것이다. 그는 한국이 0.7명 수준 출산율을 유지하면 한 세대 만에 인구가 65%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흑사병 때보다 3배나 빠른 인구감소가 나타난다는 것. 물론 단순 비교의 오류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인구 급감이 흑사병에 버금가는 대재앙인 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우리 정부가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본격 대처에 나선 게 2006년부터다. 그때 합계출산율은 1.13명이었다. 이후 17년간 출산율 제고를 위해 투입한 예산이 400조원 가까이 된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은 돈을 쓴 게 다였다. 결코 '백약'이 아니었다. 저출산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하다.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비교 문화, 비혼주의 확산 등과 연동돼 있다. 돈과 함께 다양한 복합 처방이 필요한 이유다.

사실 우리의 저출산 원인과 해법은 거의 알려져 있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유독 저출산의 주요 배경인 도시인구 집중은 간과된다. 인구밀도가 높고 삶이 팍팍할수록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인구 집중이 완화되면 합계출산율이 0.4명 이상 높아진다. 이는 여타 출산율 제고 정책 효과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도시 인구는 서울과 수도권 인구를 일컫는다.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이 그치지 않는 한 저출산 해결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현재 한국 청년(19~34세) 80%가 미혼이다. 특히 수도권 거주 청년들의 미혼 비율이 훨씬 높다. 앞으로가 더 걱정일 수밖에 없다. 지방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늘어날수록 저출산이 심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어쩌고 있나. 여당은 김포와 인근 도시들의 서울 편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리 총선용 카드라지만 경박하고 무책임하다. '서울민국' 영토가 확장하면 희생양은 단지 지방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의 미래도 암울해진다. 무엇보다 저출산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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