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시절인연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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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9 06:54  |  수정 2023-12-29 07:07  |  발행일 2023-12-29 제27면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중략)/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마음속에서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시절인연'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법정스님 육신은 13년 전에 이 세상과 시절인연이 끝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도 소중하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반론도 있다.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과 가슴을 감싸는 부분이어서 스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포옹할 정도로 남녀 사이가 깊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현대사회에서 인연의 뜻은 주로 인간관계에 한정된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해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고 했다. 사람도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우주 만물과 연결돼 명멸하는 연기(緣起)적 존재라는 것이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 해를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건강과 행복을 누렸다면 운이 좋았던 것에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 못했더라도 그 또한 삶의 한 과정이다. 받아들일수록 고통은 적어진다. 시절인연은 우리에게 집착과 낙담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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