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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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07 12:13  |  수정 2024-01-07 14:22  |  발행일 2024-01-08 제22면
민주당 이재명, 헬기 전원
전국 의사, 특권의식 비판
계속되는 '황제 의전' 논란
"억울하면 출세하라" 연상
수도권 쏠림 인정도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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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박근혜 정부 시절 황교안 국무총리는 관용차를 타고 서울역 플랫폼까지 진입해 기차를 탔다. 당시 '황제 의전'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강성국 법무부 차관은 비 오는 날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는 모습을 연출해 분노를 샀다.

 

'가붕개'도 연상된다. '가붕개'는 가재, 붕어, 개구리를 줄인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서울대 로스쿨 교수 시절 SNS에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행복을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천박한 선민의식이다. 용의 특권을 인정하고, 서민을 '가붕개'로 표현하는 차별적 사고를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이야기했다는 게 놀랍기까지 하다. 더욱이 조 전 장관이 자신의 자녀를 용으로 만들기 위해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당한 뒤 '닥터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이 대표의 헬기 전원을 놓고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논란이다. 전국의 의사들은 닥터헬기 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부산의사회를 비롯해 서울의사회, 광주의사회, 전북의사회까지 이 대표의 헬기 전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본인이 가고 싶은 병원이 따로 있었다고 해도 헬기를 타고서까지 이동하는 건 아무리 당 대표라도 납득할 수 없다", "환자들이 '나도 이재명 대표처럼 서울 가게 헬기 불러달라'고 우겨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의사들의 지적에 오류는 없다. 헬기 타고 '날아올라서' 병원을 옮기는 서민이 얼마나 될까.


민주당은 "한가한 논쟁"(장경태 최고위원)이라며 이 대표를 방어하기 바쁘다. 과연 그런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물어보고 싶다. 흉기 습격을 당한 사람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고, 의식 있는 상태에서 헬기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갔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짐작건대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검찰 엘리트 특권의식'이라는 비난을 퍼부을 가능성이 높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전제로 한 질문이긴 하지만, 민주당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야 한다. '내로남불 DNA'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대표의 헬기 전원은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과 맞물려 특권의식 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약 올리는 듯하기도 하다. 입을 열 때마다 '민생'을 강조하는 이 대표의 삶은 정작 서민과 동떨어져 있다. 자신을 '용'이나 '최고존엄'의 반열에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큰 소리를 지르는 듯하다. 특권주의 청산의 최전방에 서야 할 이 대표가 오히려 특권의식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행이 불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비수도권을 무시했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병폐로 꼽히는 '수도권 일극주의'를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 대처해야 하는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민주당이 지역 의료 살리기에 앞장서겠다며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 법안을 강행 처리한 터라 더욱 그렇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정치권의 특권주의를 비판할 때 곧잘 인용된다. '동물농장'의 돼지가 지금 대한민국에 등장해선 곤란하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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