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장마당 세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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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9 07:01  |  수정 2024-01-29 07:02  |  발행일 2024-01-29 제23면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유포한 10대 청소년들이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식 '공포정치'가 얼마나 극악한지를 보여준다. 근래 들어 북한 당국은 한국 대중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상 교육과 단속만으로는 통제가 안 되자 잔혹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걸리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길게는 10년 넘게 노동교화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이 같은 공포정치도 한류 열풍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탈북민들 증언에 따르면 현재 북한 청년들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온갖 기기를 동원해 한국 음악과 영화,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북한 내 한류의 중심에는 '장마당 세대'가 있다. 최악의 식량난이 덮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자란 20~30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년기부터 시장(장마당)을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삼았다. 국가의 부재와 시장 경제를 경험한 만큼 이들의 사고는 기성세대에 비해 자유롭다. 더구나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가까이 접했고, 최신 IT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북한이 최근 통일 불가론을 띄우며 교육사업 강화에 나선 건 장마당 세대에 대한 사상 통제가 어려워진 게 주된 요인이다. 이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한국의 실상을 많이 알고 있으며 동경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196명 중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우리의 MZ세대에 해당하는 장마당 세대가 북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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