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방시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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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9  |  수정 2024-02-19 06:58  |  발행일 2024-02-19 제23면

[월요칼럼] 지방시대?
허석윤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불통'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민생토론회는 자주 가지는 편이다. 수도권에서만 열 차례 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비수도권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테마는 국정과제로 내세운 '지방시대'다. 윤 대통령의 첫 행선지는 부산이었다. 지난 13일 열린 11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반길 만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산업은행 조속 이전을 비롯해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북항 재개발 등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총선용'이라고 비판하지만 어쨌건 윤 대통령이 '지방시대'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니 지방사람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뚜렷한 국정 어젠다가 없는 윤 대통령에게도 '지방시대'가 성공만 한다면 꽤 괜찮은 업적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한 이유도 제대로 짚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면적이 일본의 4분의 1, 미국의 100분의 1인데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그 좁은 땅마저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이처럼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저출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자리-인재-생활 환경을 연계한 '지방시대 3대 민생패키지' 정책을 통해 합계출산율을 1.0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지방근무를 한 적은 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 출신 첫 대통령이 수도권 집중 폐해를 거론한 것 자체가 고무적이긴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해법에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정부가 구현하려는 '지방시대' 청사진에 따르면 앞으로 지방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발전한다. 감격스럽긴 하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다. 나랏돈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그게 가능하겠나. 백번 양보해서 설사 '지방시대'에 근접했다고 치자. 그러면 수도권 집중이 완화될까? 그래서 합계출산율이 쑥쑥 오를까?

지난달 윤 대통령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도권 GTX(광역급행철도)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까지 GTX를 촘촘히 연결해 30분대 출퇴근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 물론 극심한 교통난에 시달리는 수도권 주민들은 박수 칠 일이다. 하지만 수십조 원대의 막대한 비용 외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GTX는 지방소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예전 KTX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 1일 생활권'으로 지역균형발전이 달성되기는커녕 정확히 그 반대가 됐다. KTX는 수도권 집중의 '급행열차'다. GTX는 이보다 더할 것이다. 조만간 서울과 수도권은 GTX노선을 따라 개발 붐이 일고 '교통지옥' 없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안 갈 이유도 더 사라진 셈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지방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효과'가 강력해질 게 뻔하다.

이게 끝도 아니다. 한술 더 떠 국민의힘은 서울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김포 등 인근 위성도시들을 대거 편입해 '서울메가시티'를 만들겠다는 것. 아무리 총선용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을 선동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정부여당은 지방도 살리고 수도권도 더 키우겠다고 한다. 정말 그런 신묘한 방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서울민국' 체제하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수도권 집중을 늦추는 데는 '뭘 하는 것'보다 '하지 않기'가 더 낫다. 서울확장 같은 '삽질'부터 멈춰야 하는 이유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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