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가짜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 |
  • 입력 2024-03-12 06:56  |  수정 2024-03-12 06:56  |  발행일 2024-03-12 제22면

2024031101000318200013311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2022년에 번역 출간된 '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는 자기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실질적인 성과와 관련 없이 그저 바쁜 일을 '가짜 노동'으로 정의한다. 현대사회의 합리성과 테크닉, 테크놀로지의 출현을 핵심 원인으로 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반성과 무엇이 가짜 노동이고 무엇이 진짜 노동인지 구별하는 성찰적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노동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시간 최상위권으로 2022년 기준 연간근로시간은 1천901시간, OECD 평균(1천752시간)보다 149시간을 더 일한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연재하는 '가짜 노동'에 관한 기사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짜 노동에 대해 보고한다. 약 한 달간 심층 인터뷰, 설문조사 등을 통해 눈치 노동과 허식 노동, 의전 노동, 의례 노동을 대표적인 가짜 노동의 일면으로 뽑았다.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자기 계발이나 충분한 휴식, 자유롭고 유연한 업무 환경은 이런 노동 환경에서 나올 수 없다. 이는 근무 이후 개인의 여가 등을 포함한 삶의 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편 일을 잘 그리고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 노동을 해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를 지워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도 있다. 청소 노동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응급실을 청소하는 노동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생사가 오가는 바쁜 현장에서 청소 노동자는 최대한 없는 듯 그러나 신속하고 청결하게 청소해야 한다. 대학교나 백화점의 청소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휴게시설 없이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을 요구받는다.

가사나 가족 돌봄 또한 보이지 않는, 가시화되지 않는 노동이다. 안 하면 표가 나지만 해도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노동에 빚지고 있다. 누군가는 가짜와 진짜를 나누고 있지만 어떤 일은 그 어떤 '일'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사람을 키우고 공간을 돌본다. 대부분의 일 또한 이런 노동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말대로 '진짜 노동'을 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가짜 노동'에 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다소 일과 무관해 보이는 노동,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실패의 과정, 나의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 주변을 정돈하고 매 끼니를 챙기는 일, 주변 사람을 돌보고 필요를 알아차려 주는 일,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고치고 지우는 반복도 모두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불필요한 절차나 허례허식, 보여주기식 과잉 노동과 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성과나 결과로 직결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그러한 노동에는 다소 쓸모없어 보이고 딴짓으로 여겨지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일은 개인의 정체성을 담아내며 한 개인의 삶과 뗄 수 없는 주요한 활동이다. 가짜와 진짜 사이, 과정과 결과 사이, 일과 생활 사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있을 때 우리는 더 잘 일하고 더 잘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