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이어달리기의 바통처럼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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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9 06:58  |  수정 2024-04-09 07:02  |  발행일 2024-04-0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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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제주북페어 2024 책운동회'에 다녀왔다.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독자'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실체 없는, 혹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의심을 피워 올리게 될 때가 많다.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체 누가, 언제, 왜 사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탓이다. 필자는 2016년부터 독립문예지와 단행본을 발간하다가 2022년부터 '시의옷'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대구를 기반으로 출판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대형 출판사처럼 저자 사인회나 북토크, 낭독회 등 여러 행사를 열어 독자와 만나는 자리가 잦지 않은 만큼 지역에서 1인 출판사로 책을 만드는 일은 꽤 외롭고 때론 고립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독립 출판이 활성화된 요즘, 1인 창작자나 소규모 출판사 그리고 독자에게 북페어 같은 행사는 저자와 독자를 잇는 의미 있고 뜻깊은 자리를 마련한다.

주최 측에서 많은 독자가 올 수 있도록 유치에 힘쓰지만 늘 판매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부스를 지키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때로는 금전적 손실까지 감수하면서 페어에 참여하는 이유는 내가 만든 책을 기다려왔던 독자, 이 책을 귀중하게 읽어줄 독자를 만나는 순간이 늘 이런 자리에서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독자를 만날 때 책을 만들면서 겪은 난관으로 인한 힘듦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나 또한 독자로 그런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자신이 만든 제작물을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애정이 담긴 소개를 들었을 때, 그 책이 나의 삶과 접속하는 지점을 발견했을 때이다. 그럴 때 단순히 책을 한 권 사는 것이 아니라 책에 담긴 보이지 않는 시간과 정성까지 고스란히 받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 작업물은 평생에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간직된다.

제작자로서 가장 좋은 행사는 아무래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다. 이동에 대한 부담이 적고 숙소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현재 대구에서는 해마다 독립 서점 '더폴락'에서 주최하는 북페어인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 열린다. 제작자 30여 팀과 저자 북토크, 기획전시, 공연 등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행사지만 지역의 창작자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반갑고 감사한 자리다. 부산과 전주, 구미, 제주 등 지역 곳곳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것은 규모를 떠나서 반길 만한 일이다. 대구는 큰 도시다. 좀 더 큰 규모의 행사가 더 생겨나도 좋지 않을까. 계절마다 책을 소개하고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주최하는 곳에 따라 성격도, 특징도, 오는 시민들도 다를 것이며 그로 인해 책을 둘러싼 세계는 더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시민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증가와 더불어 지역에 있는 창작자를 기억하고 자신의 삶으로 친숙하게 예술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책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으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나갈 것이다. 가서 내가 만든 책을 만나줄 '한 명'을 기다리며 즐겁게 소개하고 같은 마음일 제작자를 만나 한 명의 독자가 될 것이다. 책이라는 창작물은 혼자서 전력 질주하는 선수가 아니라 계주처럼 창작자와 제작자, 서점과 독자, 지자체와 시민이 함께 달리는 이어달리기의 바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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