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여고생 덮친 횡단보도 비극…"신호등은 왜 없었나"

  • 이승엽
  • |
  • 입력 2024-05-21 17:21  |  수정 2024-05-21 17:23  |  발행일 2024-05-22 제1면
19일 횡단보도 건너던 여고생 참변
필수 도보 코스지만 신호등 없어
사고 후 뒤늦게 신호등 설치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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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 북구 구민운동장 인근 도로에서 여고생이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1일 오전 9시쯤 사고 발생 지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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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 북구 구민운동장 인근 도로에서 여고생이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지점.

21일 대구 북구 구민운동장 인근 도로. 횡단보도 옆 하얀색 락카로 쓰인 글자와 기호 등을 통해 이곳이 사고 발생 지점임을 알 수 있었다. 호국로와 구암로의 램프 구간(높이와 방향이 다른 두 도로를 연결하는 방식)인 이곳에선 호국로에서 내려오며 가속도가 붙은 차량들을 보행자가 위태롭게 피해 가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보행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오랜 세월 풍화돼 이젠 흔적조차 희미해진 횡단보도가 전부였다. 한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달려오는 차량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와 마음을 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고생이 차량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서 경찰이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섰다. 신호등만 있었어도 충분히 예방 가능한 사고였다는 점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8시 27분쯤 구민운동장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고생 A(16)양이 20대 남성 B씨가 몰던 차량에 치였다. A양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경북 구미에 주거지를 둔 B씨는 도로가 익숙하지 않아 보행자를 미처 보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남성을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사고가 난 횡단보도는 국우·도남 택지지구에서 구민운동장 쪽으로 걸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이다. 인도의 맨 끝 부분과 또 다른 인도 시작점을 잇는 구간이어서 피해 갈 수가 없다. 이처럼 필수 도보 코스임에도 보행자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 그 흔한 신호등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 신호기 설치 여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청의 '교통신호기 설치·운영 업무편람'에 따르면, 하루 중 횡단보도 통행량이 가장 많은 1시간 동안 보행자가 150명을 넘거나 번화가의 교차로, 역 앞 등 보행자의 통행이 빈번한 횡단보도에 신호기를 설치할 수 있다.

경찰과 북구는 지난해와 올 초 두 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보행자 조사를 시행했다. 출근 시간대 통행자를 조사한 결과, 시간당 10여 명가량에 불과해 신호기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통행량이 적더라도 보행자 통행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보행자 작동 신호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또 구민운동장의 경우 체육시설이어서 출근 시간대 조사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적으로도 이곳이 보행자 안전에 취약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해당 횡단보도는 호국로에서 구암로로 급커브로 내려오는 지점이어서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의 시야도 크게 좁아지는 곳이다. 특히 호국로 학정2교가 횡단보도 바로 앞 그늘을 형성해 대낮에도 운전자가 보행자 볼 수 있는 시야를 가린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사망사고 후 경찰은 이곳에 차량 및 보행자 신호기 설치에 착수했다. 차량 제한속도도 기존 40㎞/h에서 30㎞/h로 하향 조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교통위원회 등에 적극 건의해 최대한 빨리 해당 구간에 신호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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