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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기자〈사회부〉 |
5월 대구는 축제의 장이었다. '파워풀 대구' '떡볶이' '한방문화' '동성로' '장미' '선사시대' '앞산'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주제로 축제가 열렸다. 각 지자체는 예산을 투입해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남녀노소 모두 먹고 마셨다. 춤과 노래가 풍성했고, 가족과 연인 등 모두가 소중한 이와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5월은 비극적인 나날이었다. 5월 첫날부터 대구 남구 대명동에 거주하던 한 30대 여성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그가 세상을 등지게 된 건 전세보증금 8천400만원이 시작이었다. 그는 유서에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도 잘살고 싶었다. 하지만 도와주지 않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썼다. 그는 60대 남성 임대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했다.
대구 남구에서 전세 사기가 벌어진 것을 알게 된 건 지난 2월이다. 당시 임대인과의 통화에서 그는 "나도 피해자다. 경기가 어려워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것이 왜 사기냐"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순위 보증금 등을 허위로 작성한 이유에 대해선 대답하지 못했고, 끝내 이달 24일 검찰에 송치됐다.
해당 임대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모두 104명이다. 이 중 경찰에 전세 사기를 고발한 사람은 11명뿐이다. 경찰에 의하면 나머지 93명 중 대다수는 본인이 전세 사기를 당했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10명 중 9명이 사기를 당한 줄도 몰랐다. 이에 경찰이 임차인들을 한 명씩 연락해 전세 사기 피해 사실을 알려주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104명이라는 피해자 수가 집계됐다.
전세 사기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세 계약을 맺은 사람이라면 결코 남 일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본인이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한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은 '투자실패'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결정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결국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등진 30대 여성은 생전 전세 사기 특별법상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 등'으로만 인정받았다. 누군가 슬픈 일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침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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