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퐝여행 레시피-포항을 즐기는 10가지 방법] (4) 문화예술을 즐기는 코스 / 포항시립미술관·석곡기념관·흑구문학관·근대문화역사관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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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30  |  수정 2024-05-30 08:30  |  발행일 2024-05-30 제14면
관광명소 속 '뉴트로 핫플'…역동적 숨결 품은 근대로의 여행
[퐝여행 레시피-포항을 즐기는 10가지 방법] (4)  문화예술을 즐기는 코스 / 포항시립미술관·석곡기념관·흑구문학관·근대문화역사관
포항시립미술관에서는 포항미술의 초석을 마련한 초헌(草軒) 장두건 화백의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퐝여행 레시피-포항을 즐기는 10가지 방법] (4)  문화예술을 즐기는 코스 / 포항시립미술관·석곡기념관·흑구문학관·근대문화역사관
석곡기념관은 이제마와 함께 개항기 한의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석곡(石谷) 이규준(李圭晙)을 기념하는 곳이다.


박물관을 뜻하는 영어 뮤지엄(museum)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문학, 미술, 철학 등의 여신인 뮤즈(Muse)를 위한 신전에서 유래한다. 정확히는 신전 안 보물창고인 무세이온(museion)을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세오녀의 비단을 보관했던 귀비고를 고대사회 초기 형태의 박물관 시설로 볼 수 있다. 박물관은 과거의 지혜와 유산을 수집, 보존, 전달, 전시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나아가 현재와 상호 작용하는 공간이며 경험하고 참여하는 공간이자 안락한 환경과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미술관, 기념관, 문학관, 역사관 등 어떠한 이름을 가졌더라도 모두가 무세이온이고 귀비고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자란 거리나 산과 바다의 품에 안긴 채로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해맞이공원 포항시립미술관
장두건·이우환…AR로 즐기는 거장의 작품

환호해맞이공원은 옛날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올라가 달을 보며 불놀이하던 동산이다. 영일만과 포항 시가지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이 넓고 푸르른 공간에는 지금 물의공원, 해변공원, 전통놀이공원, 체육공원, 어린이공원, 중앙공원 등의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포항의 핫 플레이스인 스페이스 워크가 위치하며 그 중심에 포항시립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길을 따라 오르면 불쑥불쑥 멋진 작품들과 만난다. 포항을 상징하는 철을 주제로 한 조형물들이다. 증강현실(AR)을 통해 연오, 세오가 알려주는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세계적인 거장 이우환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포스코에서 생산된 대형 철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철강도시 포항의 상징 작품이 됐다.

포항시립미술관은 2009년 12월22일 개관하였다.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로 5개의 전시실과 2개의 수장고, 세미나실, 카페테리아와 아트숍, 자료실 등을 갖춘 포항의 대표 현대미술 전시관이다. 상설 전시실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포항미술의 초석을 마련한 초헌(草軒) 장두건(張斗建)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기획 전시실은 지역 작가뿐 아니라 국내외 작가들과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는 장으로 특히 포항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철(Steel)을 주제로 한 스틸아트(Steel Art) 컬렉션과 전시기획에 주력하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은 매년 '장두건미술상'을 공모 선정하고 있으며 시민들과 교류하고 예술적 환경과 생태를 조성하기 위해 전시연계 감상 프로그램과 도슨트 교육, 금속공예 생활소품과 주얼리 소품을 직접 만드는 포항 스틸아트 시민 대상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일만 석곡기념관
'한의학 양대산맥' 석곡의 서당과 약국 재현

영일만의 남쪽 도구해변의 뒤쪽에 '석곡기념관'이 있다. 동무 이제마와 함께 개항기 한의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석곡(石谷) 이규준(李圭晙)을 기념하는 곳이다. 2층 규모의 기념관은 단순한 형태에 서까래 모양의 처마로 전통미를 드러내고 있다. 참으로 단정하고 단단한 모습이다.

석곡은 조선말인 1855년 포항 영일 바닷가 임곡마을에서 태어나 1923년 일제 강점기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 갯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낮에는 논밭으로 나갔고 밤이면 골방에 찾아들어 스스로 학문의 경지를 열어나갔다. 그는 한의학자인 동시에 유학 경전과 제자백가 사상을 독학으로 섭렵한 유학자이자 수학, 서양학, 천문학에 통달한 실학자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인(仁)'과 마주한다. '어질 인'은 석곡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석곡서가'다. 한글로 쉽게 번역한 그의 저서를 볼 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도 있다. 2층에는 석곡이 가르침을 펼친 '석곡서당'과 약재냄새 가득한 '석곡약국'이 재현되어 있고 그의 일생을 간략히 보여주는 영상관이 있다. 그는 신분의 구분 없이 학문을 가르쳤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행했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을 겪으며 다친 의병들을 치료했다. 대구의 팔능거사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는 그를 정신적 지주로 받들었다고 한다.

한쪽에는 '인터렉티브 영상체험관'이 있다. 아이가 폴짝폴짝 움직일 때마다 우주 공간 속을 떠다니는 석곡의 사상적 단어들과 그 속뜻이 펼친다. 언젠가 아이는 그 뜻을 문득 깨칠지도 모른다. 석곡은 말한다. "나의 배움이 베푸는 것이었고 그 베풂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니 나는 그저 백성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기념관의 수장고에는 석곡의 문중에서 기탁한 목판 360여 장(경북도 등록문화재)과 저술책, 생전에 사용한 물품 등이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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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구문학관 전경. 흑구의 본명은 한세광, 60~70년대 중학교 국정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보리'의 작가다.

호미곶 흑구문학관
단 한 편 친일문장도 거부한 흑구의 삶과 문학

호미곶 보리밭 너른 구만리에 새하얀 건물이 있다. 옛날 구만리 회관이었던 그곳에 '흑구문학관'이라는 검은 간판이 걸려 있다.

흑구의 본명은 한세광, 60~70년대 중학교 국정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보리'의 작가다. 1909년 6월19일 평양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영문학과 신문학을 공부했으며 1939년에는 흥사단 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한 그는 식민지 치하의 문인이었고 친일 문학에 관계하지 않은 소수의 문학가 중 한 사람이었다. 문학평론가 임종국은 그를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양의 한가운데서 검은 갈매기 떼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긴 나래를 펴고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한 주일이나 쉬지 않고 쫓아왔다. 검은 갈매기, 흑구(黑鷗). 그는 '흑(黑)'은 '다만 외로운 색, 어느 색에도 물이 들지 않는 굳센 색, 죽어도 나라를 사랑하는 부표(符表)의 색'이라고 생각했다.

한흑구는 미국에서 '대한민보'와 '동광'에 시와 소설, 평론을 발표했고 1934년 귀국하여 평양에서 월간잡지 '대평양' '백광'을 창간했다. 이후 1945년 10월 고당 조만식 선생의 주선으로 월남했고 1948년 포항 영일만 바닷가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미 공군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전란에 폐허가 된 포항여고 교정 복구, 애육시설 확보 등에 힘썼으며 1958년부터는 1974년 정년퇴임 때까지 포항수산대학(현 포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1년 5·16 이후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다시 펜을 잡은 이후에는 중앙 문단 출입을 하지 않은 채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한 수필을 썼다. 칠성천 옆 죽도시장, 영일만이 바라보이는 송도 바닷가, 형산강변도 즐겨 거닐었다. 사람들은 그를 '동해의 사색가'라 불렀다.

전시실에는 흑구 선생의 일대기 및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생활 유품들로 집필 공간이 재현되어 있다.

흑구 선생은 1979년에 세상을 떠났다. 묘지는 영일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흥해읍 죽천2리에 있다. 젊은 시절 시인이었던 그는 자연과 생명의 존엄성을 노래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수필가로 생을 마감했다.

오월의 구만리 보리밭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퐝여행 레시피-포항을 즐기는 10가지 방법] (4)  문화예술을 즐기는 코스 / 포항시립미술관·석곡기념관·흑구문학관·근대문화역사관
포항시는 적산가옥이 밀집해 있는 구룡포 거리에 '일본인 가옥 거리'를 조성했고 원형이 보존되어 있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관'으로 만들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관
100년 전 일본인 생활상·적산가옥 원형 보존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항구들은 수탈의 전진기지였고 일본인들은 대거 몰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 구룡포항과 마주 보는 거리의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들이 늘어서 있다. 포항시는 2008년부터 구룡포의 적산가옥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조사와 계획 등을 추진해 나갔다. 당시 구룡포에는 50여 호의 일본풍 가옥이 남아 있었다. 이 가운데 47채의 적산가옥이 밀집해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2010년 '일본인 가옥 거리'가 조성되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동백꽃 필 무렵'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옛 적산가옥은 말끔히 정비되어 카페와 작은 소품가게, 분식집 등으로 이용되고 있고 원형이 보존되어 있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관'이 됐다.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는 구룡포에서 선어 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이다. 그의 집은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보여주는 2층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은 역사에 속박당하지 않고 역사와 연결되는 장소로, 역사와 문화를 투명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두보로 활용되고 있다.

◆여행 정보
영일대와 호미곶 일대에 다양한 숙소와 음식점, 카페들이 자리한다. 구룡포읍에는 구룡포해수욕장이 바라보이는 호수펜션, 야외 수영장과 실내수영장, 스파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화이트7, 침대에 누워 동해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원하우스펜션 등이 있다. 구룡포 시장의 해풍국수, 모리국수, 철규분식의 찐빵도 빼놓지 말자. 동쪽 땅끝마을인 구룡포읍 석병리에도 넓은 창문을 통해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포항WE, 패밀리 전용 복층형 민박인 힐앤박, 객실별로 바닷가 바비큐 시설이 있는 바바펜션민박 등이 있다.

글=류혜숙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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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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