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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현 시인·동화작가 |
최근 모교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작가로 활동 중인 졸업생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는 콘텐츠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10년이 지났으니 그 시절이 까마득했다. 질문지에 맞춘 답변을 준비했다. 그러다 마지막 질문 앞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질문의 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작가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글을 써 번 돈을 모아 책방을 차렸다. 그 책방 한가운데 앉아 나와는 다른 세대를 살아온 청년이 차분히 마이크를 건넸다. 때때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답은 무의미할 만큼 가볍게 내려진다. 되는 대로 답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나오는 대로 말을 전하고자 했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책방을 둘러보았다.
'저에게 문학요? 문학이란 게 정말 별것 아니에요. 별것 아닌데. 그냥 살아가는 방식 같거든요.' 거기까지 대답하자, 청년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왔다.
오늘 하루 마주쳤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오늘 아침에 머리를 자르고 왔었는데. 그리고 책방 앞에서 빗자루질하던 옆 술집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커피 재고와 책 재고를 살피다가 출간을 준비 중인 단편집의 제목을 고민했지. 그러다 손님이 들어왔고. 거기까지 이르자 답변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자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침마다 술집 앞을 쓸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커피를 내리고 책을 진열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그냥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 같아요.' 거기까지 답하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가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다.
문학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머리칼을 내려다 보다가 나의 구레나룻에 집중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머리를 자른다는 건 무엇인가요? 묻는 일처럼, 문학이 무엇이냐 묻는 일은 부자연스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그는 이미 머리를 자르고 있고 머리카락은 떨어졌으며 잠시간 눈을 감았다 뜨면 내 머리는 단정해져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입니다'라는 문답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향하고 있다. 머리를 자른 그와 나에게 그런 문답은 무의미한 것처럼 작가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문학은 무엇인가. 나도 아마 그도 수없이 했을 고민을 정리하다 학부 때 들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선명히 떠오른다. 글로 말하는 작가가 되자. 아마 자주 가는 미용실의 아저씨에게 머리를 자른다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면 뭘 그런 걸 묻냐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으라 재촉했겠지. 그런 상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책방을 열고 동화와 시를 쓰며 문학을 이어간다.
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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