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대구 달성군 죽곡 댓잎소리길…竹竹 뻗은 쾌적한 숲길, 무더위를 잊는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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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16  |  수정 2024-08-16 08:12  |  발행일 2024-08-16 제15면

[주말&여행] 대구 달성군 죽곡 댓잎소리길…竹竹 뻗은 쾌적한 숲길, 무더위를 잊는다
2021년 조성한 죽곡 댓잎소리길은 전체 800m 정도 된다. 불볕더위에도 대숲은 쾌적하고 새들도 대숲의 그늘에서 종종거린다.

강창교를 건너며 왼편을 흘끔 살핀다. 빼곡하고 부드럽고 청량한 대숲의 우듬지가 보인다. 저기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간다. 주차장이 있지만 차들은 모두 강창교 아래 그늘진 교각에 코를 박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늘진 게이트볼 장에는 한 사람이 공을 치고, 강변에는 사람들이 거리두기 하듯 각자의 의자를 두고 조르라니 앉았다. 그늘을 가로지르자 쨍한 강변의 공터 앞에 '죽곡 댓잎소리길'이 나타난다. 독수리오형제처럼 차려입은 남자가 두 팔을 치켜들고 대숲 입구를 카메라에 담고는 자전거를 타고 금호강변을 날아간다. 뜨거운 가운데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 분다. 숲은 역시 숲이고 강은 역시 강이구나.

다사읍 죽곡리 금호강변 따라
2021년 길이 800m 대숲 길 조성
오죽·분죽·금죽·구갑죽·맹종죽 등
다양한 종류의 대나무 심어
길 중간 광장엔 판다 조형물 설치

5세기 신라시대 죽곡리 산성 쌓고
화살로 이용 위해 대나무 심어
강창교 건너 절벽 위 이락서당
한강 정구·낙재 서사원 학풍 기려


[주말&여행] 대구 달성군 죽곡 댓잎소리길…竹竹 뻗은 쾌적한 숲길, 무더위를 잊는다
가운데 즈음 조그마한 광장에 판다 조형물이 자리한다. 철푸덕 퍼질러 앉은 판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판다가 힛 웃는다.

◆ 죽곡 댓잎소리길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금호강변에 '죽곡 댓잎소리길'이라는 이름 예쁜 대숲이 있다. 2021년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전체는 800m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초입의 환한 대숲 길을 지나 빽빽한 숲으로 들어간다. 바람은 느낄 수 없는데 뜨거움도 습함도 없다. 쾌적하다는 것이 이런 것일 게다. 대숲에는 오죽, 분죽, 포대죽, 금죽, 구갑죽, 맹종죽, 이대, 왕대, 조릿대, 사사조릿대 등이 식재되어 있다고 한다. 조성 초반에는 각 대나무마다 이름표가 있었다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아 아쉽다. 대나무들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빛과 그늘의 강도가 걷는 내내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대숲은 먹빛이었다가 갈맷빛이었다가 쇳빛이었다가 수박빛이다. 가느다란 빛살이 가만빛의 그늘에 내려앉는다. 오솔길에 진주알처럼 작고 동그란 빛들이 어른거려 숲 위로 바람이 지나가는구나, 윤슬에 눈부신 강물 같구나, 생각한다.

중간쯤 왔을까, 조그마한 광장에 판다들이 살고 있다. 철푸덕 퍼질러 앉은 판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판다가 힛 웃는다. 얼른 와. 저 앞에선 엄마가 저 뒤에서 늑장 부리는 아들을 부른다. 한 아저씨가 슥슥슥 앞질러 사라진다. 대나무 줄기 사이로 자전거 탄 사람이 지나가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강물의 반짝임이 눈부시다. 군데군데 대나무 벤치가 놓여 있고 대나무 썬 베드가 누워 있다. 강변으로 나서는 좁은 통로도 서넛이다. 강 건너 도로변에 배롱나무가 늘어서 있다. 지금은 배롱나무가 꽃 피우는 시절이지. 꽃 분홍에 가까워지려 대숲 밖으로 몇 발자국 나섰다가 뜨악하며 물러난다. 대숲 안은 안전하다. 새들도 대숲의 그늘에서 종종거린다. 불볕 속에 꼬리가 붉은 잠자리가 날고 슥슥슥 앞서 사라졌던 아저씨가 다시 슥슥슥 뒤로 사라진다.

◆ 죽곡리 죽곡산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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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는 강창역 남쪽의 아파트단지와 성서자동차부품단지다. 성서산단서로를 따라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대숲의 끝에서 디아크를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왕성한 여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이어지는 대숲으로 나아간다. 하늘이 열려 있으니 어린 대숲인가. 고운 대숲 길은 짧고, 곧 태풍이라도 만난 듯 어지러운 모습으로 끝이다. 누군가 시도하여 남겼을법한 틈새를 헤쳐 나가 조심조심 강변으로 내려선다. 물컹거리는 땅, 이제 막 육상으로 올라선 듯한 풀과 나무들이 태고의 숲처럼 아름답고 무섭다. 메머드 사냥꾼처럼 전진하다 깨닫는다. 디아크는 대구외곽순환도로의 V자 교각과 여름에 갇혔고,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하다. 대숲과 어린 대숲 사이로 디아크와 강정보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급경사로 나 있다. 천천히 조금만 올라본다. 길가에 큰낭아초가 정말 많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본 적이 없어 신기하다. 자전거길이 멀리멀리 직선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둘 셋 지나치며 쳐다본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것은 같을 듯하다. 미쳤군.

은빛의 대구외곽순환도로 위로 나지막하게 누운 산은 죽곡산이다. 산의 동편 금호강변 일대는 죽곡(竹谷) 또는 대실, 남동부 산기슭 아래 낙동강변은 강정, 두 자연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합해져 오늘날의 죽곡리가 되었다. 금호강과 낙동강은 디아크 앞에서 만나고, 낙동강 너머는 대가야의 고장 고령이다. 이쯤 되면 죽곡산의 지위가 가늠된다. 실제 죽곡산에는 5세기의 것으로 여겨지는 산성과 5세기 중후반의 고분, 6세기 초의 고분이 중첩된 형태로 남아 있다. 특히 순장묘도 발견되었는데 금동허리띠, 환두대도, 금동귀걸이, 금동반지 등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낙동강 신라 관방 유적들은 4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있다. 이는 신라의 확장으로 인해 가야 소국들과 접촉하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죽곡리 산성은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통제하고 대가야에 맞서는 낙동강 방어선이었다. 성을 쌓고, 화살로 이용하기 위해 대나무를 심은 곳이 죽곡이다. 옛날 죽곡은 마을 전체가 대나무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 이락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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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교 아래 그늘에서 강 건너 절벽위에 자리한 이락서당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서당은 관란대에 앉아 오래오래 금호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아저씨는 당연하고도 똑똑하게 '댓잎소리길'을 왕복하고 있었지만, 나는 참 미련스럽게 정오의 불볕 속을 걸어 본다. 물새 한 마리가 물살을 맞이하며 밀리지도 않고 미동도 없이 물위에 떠 있다. 지친 듯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굳건한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뒤돌아보면 죽곡산은 대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까치발로 두루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죽곡산의 별명이 취모봉(醉帽峯)이라 한단다. 모자를 쓴 사람이 술에 취해 조는 것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저 오늘은 모자 쓴 사람이 불볕 아래 오수에 든 걸로 하자. 멀리 강창교 다리에 얹어진 기와지붕이 보인다. 다리 아래 게이트볼 장에는 중절모를 쓴 노인이 공을 치느라 팔을 휘두르고 있다.

기와지붕은 이락서당(伊洛書堂)이다. 강창교 아래 거리두기 하듯 각자의 의자를 두고 조르라니 앉은 사람들 곁에 나란히 서면 강 건너 절벽위에 자리한 서당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이락서당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을 추모하고 그 학풍을 잇기 위해 만든 서당으로 1799년 늦봄에 정조의 명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1939년에 중수했고 2010년에 중건하여 고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벼랑은 관란대(觀瀾臺)다. 볼 '관'에 물결 '란', 즉 물길을 살피는 대다. 서당은 관란대에 앉아 오래오래 금호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모습을 보았을 것인데 길은 참 공교로운 자리에 생겨서 이제 서당은 물길을 살피는 대신 물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한 사람이 모두와 뚝 떨어져 교각 기단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다. 물살을 맞이하며 밀리지도 않고 미동도 없이, 마치 물새처럼.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30번국도 달구벌대로를 타고 성주방향으로 간다. 계명대 성서캠퍼스 지나 강창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내려서면 바로 간이화장실과 큰 주차장이 있고 강창교 아래를 통과해 죽곡 댓잎소리길 입구에도 주차 공간이 있다. 지하철2호선 강창역이나 대실역에서의 접근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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