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현장] 말도 안되는 상황에 시민들은 국회에서 "계엄철폐"를 외쳤다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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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4 03:15  |  수정 2024-12-04 10:36  |  발행일 2024-12-04
[국회 현장] 말도 안되는 상황에 시민들은 국회에서 계엄철폐를 외쳤다
4일 0시30분쯤 국회 앞 도로에 군 차량이 진입해 있는 모습.

대한민국 현대사의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하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정치·사회·경제에 대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급작스런 계엄령은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도, 여당 국회의원들도 모르고 있었으며 그야말로 '기습' 선포됐다. '계엄령'은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제기된 바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사실상 괴담으로 치부됐고 대통령실과 여당도 직접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라인 이른바 충암파의 소행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갑작스런 계엄 발표
이날 밤 10시30분쯤 윤 대통령은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발표했다. 기자단에게도 공지가 되지 않고 갑자기 예산 관련 브리핑과 같은 긴급 발표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을 뿐이었다. 이를 확인하게 위해 대통령실 대외협력 등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답은 없었다. 이후 유튜브 라이브까지 진행되면서 이게 '무슨일이냐'는 대화만이 단체 대화방에서 오갈 뿐이었다.

윤 대통령의 급작스런 발표 이후 밤 11시25분쯤 박인수 육군대장이 계엄사령관이 됐다는 발표 이후 계엄사는 곧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국회나 지방의회, 정당 등 정치 활동이 중단된다는 것으로 계엄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나 구금, '처단'이 가능하다는 무시무시한 발표가 이뤄졌다.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물론 이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국회 앞 마당에 군 헬기 착륙 및 국회 앞마당 진입 시도했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는 바리케이드도 설치됐다. 계엄 직후 의원, 기자 등의 국회 출입도 불가능했지만 잠시 열린 뒤 0시를 전후해 모두 막혔다. 기자를 포함해 현직 의원들까지 출입을 하지 못해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회 현장] 말도 안되는 상황에 시민들은 국회에서 계엄철폐를 외쳤다
4일 오전 0시쯤 시민들이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몰려있다.


◆ 국회로 나온 시민들… 성숙한 시민의식 보여주다
이후 국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기자도 밤 11시40분쯤 택시를 타고 국회로 이동했는데 여의도 지하차도에서 더 이상 갈 수 없어 걸어가야 했다. 택시기사는 "나라가 망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4일 0시 쯤 국회 앞은 경찰들로 바리게이트가 쌓였다. 출입이 불가능하자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 경찰들과 대치했다. 물리적 충돌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고성과 항의로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의원들과 보좌진들 기자들까지 출입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내란 음모로 부역자들은 처벌을 받는다"고 했지만 경찰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일부 경찰 지휘관들이 보좌진들과 대치하면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출입구를 찾아달라"고 말하면서 답답해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잠시 국회 수소충전소 인근에서 의원들만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원들이 대거 이동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시민들은 주로 국회 주변에서 "계엄 철폐"나 "군과 경찰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평화로운 집회를 벌였다.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합류한 것은 오전 1시 이후였다. 시민들은 국회로 진입하려는 군인들을 막으며 항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다만 군은 다른 출입문을 찾아 들어갔고 국회 본청으로 들어가 의원들과 대치하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몸싸움은 하지말라' '때리면 안된다' '욕은 자제하자' 등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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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0시쯤 국회 앞 수소충전소 인근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 출입증 패용 시 국회진입 가능 등 소강상태
국회의장이 4일 0시30분쯤 본회의를 개의하고 이후 51분쯤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시민들은 환호했지만 경찰 병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국회에서는 군이 빠졌지만 계엄이 공식적으로는 해제되지 않은 만큼, 경찰은 질서유지라는 목적으로 국회를 더욱 둘러싸기 시작했다.

오전 1시30분쯤 국회에 기자와 보좌진들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다시 국회에 진입했을 땐 이미 소강상태였다. 보좌진들과 기자들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혹시 있을 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대기했다. 다시 군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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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2시쯤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기자 및 보좌진, 국회 직원 등이 대기하고 있다.


오전 2시 이후 국회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에도 대통령실은 특별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고, 국방부는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기 전까지는 계엄사령부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이같은 상황이 장기간 대치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국회 현장] 말도 안되는 상황에 시민들은 국회에서 계엄철폐를 외쳤다
4일 오전 3시쯤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등 야권 의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군 지휘관과 장병여러분들게 당부의 말씀 드린다"며 단상에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우 의장은 "비록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따라 국회로 군이 출동은 했지만 무엇보다 헌법에 따른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에 따라 즉각 철수한 것은 민주주의와 함께 성숙한 우리 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평가한다"면서 "불행한 군사 쿠데타의 기억을 가진 우리 국민들께서도 오늘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 군의 성숙한 모습을 확인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를 요구했고 국회가 요구하면 대통령은 계엄법에 따라 지체없이 해제해야 한다"며 "이를 인식하고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하는 어떤 위헌·위법적 명령도 단호히 거부해서 헌법과 국민을 수호하는 국민의 군대로서 군의 기본 책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사진=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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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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