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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4일 대한민국 헌정사에 '부끄러운 기록'이 쓰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 계엄령' 발표로 대한민국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군인들의 국회 진입 및 체포 시도, 언론 통제, 영장 없이 '처단' 가능 등의 발표에 국민은 불안 속에 밤을 보내야 했다. 이 같은 계엄 사태는 국내 정치·사회·경제·외교 전 분야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정치 평론가들은 물론 외신에서조차 '실책' 또는 '정치적 자살'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이에 정치권은 윤 대통령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답해야 할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탄핵·하야 거론
4일 야권은 탄핵에 힘을 집중했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하야'를 선언하지 않으면 주 중 탄핵안을 처리해 직무를 정지시키겠다고 압박했다. 윤 대통령이 하야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만큼 탄핵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민주당·조국혁신당·개혁신당 등은 이날 탄핵안을 발의하고 6~7일 중 표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탄핵 사유는 당연히 '비상계엄'이다. 헌법에서는 전시나 사변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군 병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날까지 한국사회가 계엄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사실상 '내란' 행위였다는 것이 야권의 설명이다. 문제는 가결에 필요한 의석 수다. 200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범야권 의석 수(192석)만으로는 통과가 어렵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변수가 될 수 있다.
◆탈당·거국내각
반면 계엄을 '모르고 당한' 여당의 입장은 "탄핵은 안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잇달아 열고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해임 등 책임자 문책, 내각 총사퇴, 윤 대통령 탈당 요구 등을 논의했다. 탄핵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목소리는 소수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은 비상상황임에도 친윤과 친한으로 갈렸으며 '재집권'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탈당 요구도 다수가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친윤계 한 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하야하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의원은 탈당 시 여당 지위를 잃는 실리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진의원은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까지 국민의힘의 많은 의원들이 솔직히 어제 위헌적인 비상계엄령에 대해서 그 어떤 심각성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며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야권과의 협상을 통한 '임기 단축'이나 '거국 내각'을 제시했지만, 당이 여전히 친윤·친한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尹 직접 말해야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 윤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구 출신의 한 정치 평론가는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이를 공감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 봐야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윤 대통령 지지율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경제 여파도 상당하고 대외 신인도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 사태를 수습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라며 "이런 혼란상을 만든 상황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국민에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정재훈기자

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