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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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30  |  수정 2024-12-30 08:44  |  발행일 2024-12-30 제23면

[월요칼럼]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김수영 논설위원

가끔 '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해 매우 놀라는 경우가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도 그랬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이 몇 달 전 계엄을 언급했을 때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며 쓴웃음 지었는데 현실이 됐다.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탄핵 정국으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삽시간에 일어난 계엄과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2주 동안 수많은 일이 정신없이 진행됐다. 얼마나 예상 밖이고 흥미진진했으면 외신이 "K-드라마를 연상하게 한다"라고 했을까. 긴박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연거푸 쏟아내는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K-드라마의 위력이 이런 식으로까지 확산할 줄은 몰랐다. 달달한 멜로드라마였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그 누구도 완벽한 승자가 될 수 없는 난투극의 주인공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혼란은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당분간 이래저래 힘든 시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올스타' 법률팀을 구성하고 계엄 선포가 통치 행위이므로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더라도 이 혼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다. 계엄 사태 이후 국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2004년과 2016년 대통령 탄핵 위기 때는 그나마 경기 상승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외 악재가 사방에 널려 있다. 내수 부진, 수출 둔화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탄핵사태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리스크까지 덮치면서 정치와 경제 전반의 위기를 우려할 처지가 됐다.

그나마 국정 정상화에 물꼬를 터줄 것으로 희망을 걸었던 '여야정 협의체'도 출범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여야가 민생 안정, 외교 공백 최소화 등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마저 가결되면서 여야정 협의체는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커졌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앞둔 데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을 당해 직무가 정지되면서 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 수습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요원해졌다.

문득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떠오른다. 오페라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곡보다 극 분위기 전환을 위한 간주곡이 더 유명해져 주객이 전도된 예가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두 남자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결투 전에 연주된다. 한 여인을 사랑한 두 남자를 소재로 한 이 치정극은 극 초반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데 1막과 2막 사이 간주곡이 잠시 관객의 긴장을 풀어준다. 봄날 평온한 시칠리아 풍경을 담아 아름다움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1막이 끝나고 2막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그 사이에 있다. 이제 탄핵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정부와 정치권은 탄핵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2막 오르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처럼 폭풍 전야의 급박한 상황을 잘 승화시키길 바란다. 나아가 늘 해피엔딩이었던 K-드라마의 멋진 엔딩도 기대한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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