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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2023년 2월14일 한국 시인 오탁번이 세상을 떠났다. "풍원 부원군 류성룡이 졸하였다. 성룡은 안동 출신으로 호는 서애이며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일찍부터 중망이 있었다"가 서두인 선조수정실록 1607년 5월1일 기사가 떠오른다. "청송 부사 정붕이 졸했는데, 46세였다. 정붕은 자가 운정이며 선산 사람인데, 임자년(1492)에 급제했고, 연산군 때 대간을 지내면서 누차 곧은 진언을 하다가 영덕으로 유배되었다"로 시작되는 중종실록 1512년 9월9일 기사도 생각난다.
현대의 국가기록물도 조선왕조실록처럼 누군가가 '졸'하면 그 소식을 전하면서 일정한 평언까지 덧붙여두는지 궁금하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는 사관의 기록을 임금이 못 보게 했지만, 민주주의 사회이면서도 요즘은 오히려 언론 자유가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탁번 시인 2주기를 맞아 그의 하세 소식을 새삼 전하고, "시 전문 계간지 '시안'을 발행해 한국시 발전에 공헌했다"를 핵심 업적으로 꼽은 두산백과의 평가를 널리 알리려 한다. 물론 시인의 기일을 맞았으니 그의 시를 성심껏 읽어보는 것이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저녁 연기'를 소리없이 읽어본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들에서 뛰어놀다가/ 터무니없이 기다랗게 쓰러져 있는/ 나의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면 보이던/ 어머니의 손짓 같은 연기// 마을의 높지 않은/ 굴뚝에서 피어올라// 하늘로 멀리멀리 올라가지 않고/ 대추나무나 살구나무/ 높이까지만 퍼져 오르다가는,// 저녁때도 모르는 나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와서,/ 어머니의 근심을 전해주던/ 바로 그 저녁연기였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근심한다.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그렇다. 그런 기질이 전혀 없는 인간형은 선량한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저급한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그의 눈에는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 자신에게 오는 저녁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저녁연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은 고마운 이에게 돌아간다. 물론 논두렁 밭두렁을 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져 아이를 찾은 저녁연기처럼 그는 낮은 자세로 살아간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런 기록을 남기고 싶었을 법하다.
좋은 글은 역사에 남는다. 역사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의 시간은 항상 현재가 된다. 보통사람의 생과 사는 단절되지만 역사의 인물은 끝없이 오늘을 살아간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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