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변호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

  •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 |
  • 입력 2025-03-05  |  수정 2025-03-11 16:36  |  발행일 2025-03-05 제19면

[문화산책] 변호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
이정진<변호사>

변호사란 직업은 주로 법률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보니 항상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나서 상담하고 소송을 수행한다. 고객들은 무척 좋은 사람들이지만 이러한 소송문제를 안고 있을 때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변호사는 전반적으로는 고객이 안 좋은 상태일 때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극히 일부 고객이지만 심인성(心因性)으로 우울증 에피소드를 보이기도 한다.

변호사는 고객의 어려운 사정을 듣지만 그렇다고 고객이 느끼는 아픔을 전적으로 공감하진 않는다. 고객은 같이 슬퍼할 사람으로 변호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본인의 편에서 해결해줄 조력인으로 변호사를 찾는 것이다. 변호사는 본분을 지켜 중심을 잡고 고객을 리드하고 고객의 치열한 문제들을 맞이하며 가장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니 적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는 내 안에서 이성이 감정을 누르고 최대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반면 미술관에 가면 전혀 딴 세상을 맞이한다.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 외에는 이성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미술관 안에서는 내 안의 감성이 살아나 이성을 압도한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된다.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는 '정말 멋진 작품이다, 이런 것도 작품으로 작가니까 낼 수 있는 건가' 다양한 생각을 한다.

도록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있지만 유심히 읽어보진 않는다. 20~30대에는 작가가 무슨 의도로 저런 작품을 내었는지 열심히 살펴보았다. 지천명(知天命)을 앞에 둔 시기 이제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작품을 본다. 블링크(Blink)! 작품 앞에 서서 수초간 보았을 때 나에게 전달되는 느낌을 온몸으로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내가 느끼는 생각·감정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걸 넘어서 내가 보았다면 그건 그대로 그 작가가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현실생활에서 이성이 극도로 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종종 미술관을 가는 것은 내 안의 감성을 깨워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는다. 또는 각종 음악, 뮤지컬, 오페라 공연을 보기도 한다. 각자 나름의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미술관은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전시관 속에서 내 안의 조용한 감성의 느낌을 듣기 좋다. 내가 미술관을 가는 이유이다.

이정진<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