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안돼 세상소식 깜깜, 감옥살이 같아"…안동 이재민 임시주택 가보니

  • 피재윤,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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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2  |  수정 2025-04-22 07:51  |  발행일 2025-04-22 제10면
총 20세대 각각 9평 원룸생활

기본가전만 구비 불편함 호소

후원물품도 적기 미지급 불만
TV 안돼 세상소식 깜깜, 감옥살이 같아…안동 이재민 임시주택 가보니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동화나라 한편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내부 모습.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TV 안돼 세상소식 깜깜, 감옥살이 같아…안동 이재민 임시주택 가보니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동화나라 한편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모습.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사람이 최소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은 알아야 하는데, 여기 있으면 변변찮은 라디오 하나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옥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경북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동화나라 앞 운동장에 마련된 임시주택에 입주한 한 60대 이재민의 하소연이다. 지난달 대형 산불이 할퀴고 간 경북 안동의 마을은 여전히 잿더미 위에 멈춰 섰다. 그을린 집과 폐허가 된 터전, 그리고 무너져버린 일상. 농번기를 앞두고 분주해야 할 주민들은 이제 하루를 견디는 데만 온 힘을 쏟고 있다.

21일 방문한 일직면 임시주택 단지는 총 20세대 규모로 30㎡짜리 원룸 형태로 조성돼 있었다.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밥솥 등이 갖춰져 있었지만, 새 삶을 꾸리기 위한 이재민들에겐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나흘 전 이곳에 입주한 황말숙(83) 할머니는 "좁은 데다 내 집 같지 않아 낯설고 불편한 게 많다"면서 "그중에서도 붙박이장이 없어 물건을 둘 곳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 집에서 쓰던 TV를 가져와 연결했는데, 나오지 않아 한동안 벽만 보고 있다"며 "밤이 되면 아무런 생활이 안 되는 데다 혼자 있다 보니 우울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산불 당시 불길을 피해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온 황 할머니는 매일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로 이동한다. 기르던 강아지가 여전히 불탄 집을 지키고 있어 끼니라도 챙겨주려는 마음 때문이다. 황 할머니는 "지금 있는 임시주택도 1~2년 있다가 비워줘야 한다. 그때까지 불탄 집을 철거하고 조립식 주택이라도 놓아야 하는데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통곡했다.

황 할머니와 같은 날 임시주택에 입주한 김철규(69)씨는 "다른 이재민들도 있는데, 그나마 우선 잠이라도 잘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며칠 생활해 봤는데 이곳 생활이 감옥살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TV라도 있으면 외부 소식을 접할 텐데,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너무 불편해 산불 피해를 입은 공장에서 불탄 가구를 몇 개 얻어와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의 방 내부에는 불탄 선반 등의 가구들이 있었다.

김씨는 "제일 문제는 이왕이면 제대로 된 가전제품을 지원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전기밥솥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것 중에 제일 싸구려 제품을 마련해줘 지금은 냄비에 밥을 지어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 침구 세트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임시주택 방마다 마련된 침구 세트를 높으신 양반들이 직접 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봤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물품 후원 문제도 이재민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후원 물품이 동네 단위로 전달되고 있지만, 대부분 컨테이너 안에 보관돼 있고 개별적으로 수혜를 받지 못한 이재민이 태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황 할머니는 "이불이라도 받으려 했는데, 개별적인 요청이라 줄 수 없다고 한다. 양말이나 내의라도 받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재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삶터'다.

피재윤·정운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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