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태기자
봄이 오면 울릉도 산자락은 생명력으로 넘실댄다. 땅속에서 솟아난 나물들이 햇살을 받아 푸르게 자라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 생명의 계절에 역설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지난 10년간 울릉도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다 목숨을 잃은 이가 17명. 봄나물 한 소쿠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주는 숫자다. 울릉도는 매년 4월에 20일간 국유림에서 산나물을 채취할 수 있다. 올해도 595명이 산나물 채취 허가를 받았다. 이들 중 60%가 넘는 360명이 60세 이상 노인이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노인들이 허리 굽혀 나물을 뜯는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존과 생계를 위한 위험한 도전과 처절한 노동이 숨어있다. 산나물 채취는 울릉도 주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다. 이 짧은 기간에 주민들은 일 년 생계를 위해 험한 산을 오른다. 나물 한 줌이 귀한 돈이 되는 시기, 최대한 많은 나물을 채취하려는 욕심이 위험을 불러온다. 안전보다 수확량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가파른 비탈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로 조난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울릉경찰서는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4월 테마치안으로 '산악안전사고 예방활동'을 선정했다. 산림청과 합동으로 조난 시 대응방법, 안전채취요령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악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산나물을 채취하다가 2명이 부상을 입어 육지 병원으로 후송됐다. 교육과 캠페인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산나물 채취 허가자의 대부분이 노인인 현실은 지역 사회의 노인 빈곤 문제와 맞닿아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산에 올라야 하는 노인들의 처지는 단순한 안전 문제를 넘어선다. 산나물 채취의 위험성은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고령화된 섬 주민들에게 산나물 채취는 생계 수단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전 장비 지원, 위험 구역 출입 제한, 고령자 안전 관리 강화 등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또한 산나물 채취 허가 인원을 제한하거나, 채취 구역을 안전한 지역으로 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소득 증대와 안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산나물 한 바구니가 한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 봄나물의 쌉싸름한 맛에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맛을 즐기는 우리는 그 뒤에 숨은 위험과 희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산나물 한 접시의 가치가 인간의 생명보다 가벼울 수는 없다. 울릉도의 봄은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지, 죽음이 드리우는 계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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