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이미자의 노래에 담긴 한의 세월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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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02  |  발행일 2025-05-02 제26면
[하재근의 시대공감] 이미자의 노래에 담긴 한의 세월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미자가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진행했다. 앞으로 더 이상의 단독 공연이나 레코드 취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가요계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느낌이다.

이미자는 개발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슬픈 노래의 1인자라는 뜻이다. 바로 그것이 그 시절을 대표하는 정서 중의 하나였다. 그녀가 처음부터 슬픈 전통가요를 불렀던 것은 아니다. 1959년 데뷔곡 '열아홉 순정'은 서구적 스타일이었다. 1964년 '동백아가씨'의 범국민적 히트 이후 '엘레지의 여왕'의 시대가 열렸다.

구한말 이래 고난의 세월을 겪어왔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견디고 났더니 해방 후의 가난과 혼란이 찾아왔다. 곧이어 전쟁이라는 참혹한 파괴가 이어졌고 전쟁 이후에도 혼란은 여전했다. 개발시기엔 두 정서가 공존했다. 미래 발전에 대한 희망과 현실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이다. 그 시절엔 모든 국민이 경제개발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인권, 노동권 같은 것은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수출입국을 위해 오로지 일만 해야 했다. 많은 국민이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서러운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독일, 베트남 전장, 중동 등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경제발전의 희망 속에서도 한의 정서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서가 특히 응축된 것이 여성들의 삶이었다. 경제발전 초기 경공업이 수출을 이끌 때 공장을 채운 이들이 여공이었다. 버스 차장, 식모 등으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낸 여성도 많았다. 결혼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바로 그런 시대 한의 정서를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표현한 것이 이미자의 '엘레지'였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노래에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이미자가 파월 장병 위문공연을 가자 현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파독 광부, 간호사 공연을 갔을 때도 역시 눈물바다가 이어졌다.

이렇게 그녀의 노래는 개발시대 우리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해주었다. 60년대 초에 패티김, 최희준 등이 인기를 끌며 서구풍 음악이 득세했는데, 64년 '동백아가씨' 이후 전통가요가 부흥하기도 했다. 그녀로 인해 전통가요의 맥이 이어졌고, 개발시대 국민이 그 전통가요에서 위안을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주류 엘리트들은 전통가요를 무시했다. 젓가락 장단이나 맞추는 저질 '뽕짝'이라고 했고, 눈물 짜는 신파, 심지어 왜색이라고 폄하했다. 그렇다보니 국민 히트곡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이미자의 여러 곡이 금지곡이 되기까지 했다.

저질이라는 건 서구 순수예술을 추종하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다. 한은 그 시절 우리 국민의 일반 정서였는데 그걸 신파라고 비웃는 건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 것이다. 서구음악이 일본을 통해 들어와 우리 민요 등과 결합해 토착화한 것이 전통가요인데 이걸 왜색이라고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질시를 받으면서 이미자는 우리 전통가요의 맥을 지키고 국민을 위로해왔다. 그녀는 89년에 세종문화회관 대관을 저급한 음악이라고 거절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켜 대중가수 최초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했었다. 이번엔 세종문화회관이 3회에 걸쳐 먼저 요청했다. 전통가요의 위상이 상전벽해해, 세종문화회관이 이미자를 삼고초려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공연에서 그녀는 후배들에게 전통가요의 맥을 넘겼다. 이제 한의 시대가 끝났으니 후배들이 앞으론 또 다른 정서의 전통가요로 맥을 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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