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커버스토리] 관광으로 살리는 경북산불 피해지역, 화마가 할퀸 경북에 새 희망을…](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12.5f2c830d2f434f3393a2d9382f717c55_P1.jpg)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도산서원 내부. 농운정사(왼쪽 건물)와 옥진각 유물전시관. 조현희기자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경북은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지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산불은 꺼졌지만 상처는 꺼지지 않았다. 불확실한 세계에 던져진 이상 고통받는 것은 자연적인 법칙이지만 일상의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은 잔혹하다. 울창했던 숲은 검게 그을리고 초록빛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주민들의 한숨이 깊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달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가뜩이나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는데 경제까지 침체될까 시름한다. 버텨야 한다는 의지만으로는 쉽게 살아갈 수 없다.
이를 되살리는 방법이 여행이다. 상처 입은 주민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달 '여행+동행 캠페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원봉사와 여행을 결합한 '볼런투어(Voluntour)'의 일종이다. 하와이는 마우이 대형 산불 이후 이 캠페인을 전개해 관광 수요를 성공적으로 회복했다. 산불 피해지역으로의 여행은 선순환에 함께하는 큰 동행이 될 수 있다. 지난 주말, 잿빛 속에서도 빛나는 안동과 영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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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한 고산정. 성재 금난수가 학문 수양을 위해 지은 정자다. 조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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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 맞은편에서 바라본 청량산 암벽과 낙동강 풍경. 조현희기자
안동 고산정
퇴계 이황의 제자 성재 금난수가 지은 정자
청량산 절경 뽐내며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지난 산불의 상처를 씻어내려는 듯. 관광택시를 타고 안동 도산면으로 향했다. 도산면은 낙동강 상류를 따라 펼쳐진 고즈넉한 마을로 자연과 전통이 숨 쉬는 공간이다. 현재 반값 할인이 더해져 5시간 동안 단돈 5만원에 택시기사의 맛깔난 해설을 들으며 지역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안개 자욱한 산이 산수화처럼 펼쳐졌다.
첫 행선지는 가송리에 위치한 고산정(孤山亭)이었다. 청량산 암벽 옆에 위치한 정자다. 2년 전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 시리즈를 기획할 때 취재차 방문했다. 경관에 반해 또다시 찾았다. 이곳을 한 번만 찾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청량한 풍광을 보면 저절로 감탄의 소리가 나온다. 구름 한점 없는 가을날 찾았을 때보다는 흐렸지만 감탄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안동 이육사문학관
치열한 삶을 산 저항시인이자 이황의 14대손
민족 비운 소재 애국심 노래한 '광야' 등 전시
고산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학문과 수양을 위해 1564년 지었다. 이황은 이곳을 자주 찾아 빼어난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ENA·SBS Plus의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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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면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 이육사 시인은 안동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조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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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면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 내 이육사 서재 전시. 조현희기자
고산정 맞은편에서 또다른 경관을 감상하고 이육사문학관으로 간다. 사실 이 도산권 일대는 퇴계 이황에서 시작해 퇴계 이황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동 도산면은 이황의 가문 진성이씨의 집성촌이기 때문이다. 안동 도산면에서도 태어난 저항시인 이육사도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1904년 5월18일 이가호(李家鎬)와 허형(許蘅)의 딸인 허길(許吉)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했다.
문학관에서 열린 전시를 둘러본다. 육사의 집안은 저항성이 강한 성격을 보였다. 이곳 원촌은 하계와 함께 항일 투쟁사에 우뚝 선 마을이다. 하계 출신 예안 의병장 이만도는 일제강점에 단식으로 순국항거했다. 김희곤 안동대 명예교수는 "친일적인 행위나 태도를 인정하지 않는 적극적인 사고와 생활자세가 돌연변이로 어느날 갑작스럽게 만들어지기 힘든 일이다. 정신적 틀, 전통적 규범이 육사를 길렀다"고 썼다. 그의 시 '광야'가 유독 외침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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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히는 도산서원. 1574년에 지어졌다. 조현희기자
안동 도산서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된 한국 대표 서원
전교당·광명실 등 조선시대 학문 연구 공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흐르는 빗물이 마치 육사의 시에 담긴 뜨거운 눈물을 떠올리게 했다. 도산서원으로 향하는 길, 빗방울에 젖은 나뭇잎들은 한층 푸르게 빛났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이황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574년에 지어졌다.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을 모신 만큼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1969년 5월28일 사적 제170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서원에 들어서면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陶山書院)' 편액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선조의 명으로 하사했다는데 긴장하여 조금 날려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이황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내부는 이황의 위패가 모셔진 상덕사, 유생들이 공부하던 전교당, 기숙공간이었던 농운정사, 서적을 보관하던 광명실, 과거시험을 기념하는 시사단 등 다채로운 전통 건축물로 구성돼 있다. 조선시대 학문과 일상의 흔적이 생생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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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구시장 내 찜닭골목. 산불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출이 50~60% 줄었다. 조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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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구시장 내 찜닭골목에 위치한 사대부찜닭의 대표 메뉴. 조현희기자
안동구시장 찜닭골목
간장 베이스 짭조름한 맛 매력적인 지역 별미
산불 피해로 관광객 발길 끊기며 매출 반토막
도심에는 안동구시장 찜닭골목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 들어서자 짙은 간장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닭 냄비들이 펼쳐졌다. 안동찜닭의 매력은 단연 깊은 간장 양념에 있다. 진득하게 졸아든 닭고기는 부드럽고 촉촉했고, 짭조름한 국물이 당면에 스며들어 중독적인 맛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곳 상인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산불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출이 50~60%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마냥 낙담하고 있지만은 않다. 안동찜닭생산협회 측은 "이 봄에 다시 일어서기 위해 상인들이 큰 마음을 먹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골목 내 25개 찜닭집은 손님 유치를 위해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골목 내 일반 상가에서는 채소와 간고등어 등 지역 특산품과 기념품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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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대표 야경 명소인 월영교. 조선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조현희기자
안동 월영교
낙동강 감싸는 산세 풍경 일품인 야경 명소
아침이면 물안개 뒤덮여 신비로운 분위기
저녁까지 먹고 나오니 해는 어느새 져 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가야할 곳이 있다. 안동 대표 야경 명소인 월영교(月映橋)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뤄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 속에 파고들게 한다. 밤에는 조명과 달빛으로 매력을 발산하지만, 아침이면 물안개로 뒤덮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월영교는 조선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리는 상징물 역할도 한다. 420년 동안 무덤 속에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빛을 보게 된 편지를 통해 알려진 '원이엄마' 이야기가 주인공이다. 편지에는 남편을 낫게 하려고 부인(원이엄마)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신발(미투리)을 삼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안타까운 마음과 사모하는 정을 표현하고 있다. 월영교의 다리 곳곳에는 이응태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미투리 형상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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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가는 도로에서 본 산불 피해 현장. 나무들이 타 검게 그을려 있다. 조현희기자
영덕 삼사해상공원
탁 트인 바다 전망 자랑하는 새해맞이 명소
지역 생활상·민속 한눈에 '어촌민속전시관'
아침이 밝고 나서는 영덕으로 향했다. 안동터미널에서 영덕터미널로 간다. "여기까지 번졌네… 끝이 없다." 버스 안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버스는 굽이진 도로를 따라 달렸지만 창밖의 풍경은 몇십 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대낮인데도 무겁고 어두웠다. 고개마다 푸른 잎은 온데간데없고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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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해상공원에서 내려다본 영덕 동해 바다. 조현희기자
![[위클리 커버스토리] 관광으로 살리는 경북산불 피해지역, 화마가 할퀸 경북에 새 희망을…](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12.a85add6bf23247af9b24ce4222346406_P1.png)
삼사해상공원 밑에 위치한 강구항쪽 해안. 해안을 따라 어촌마을이 조성돼 있다. 조현희기자
영덕 해안가에 도착하자 푸른 바다와 탁 트인 하늘이 맞아준다. 삼사해상공원으로 올라간다. 강구항 남쪽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위치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매년 새해맞이 일출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망과 결심을 담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원 가장 끝에 자리한 어촌민속전시관에선 영덕 어촌지역의 삶과 민속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공원은 생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여전히 자연과 역사가 숨쉬고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피해지역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절실하다. 경북도는 산불 피해지역 중심으로 관광 회복을 위한 다양한 할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경북도와 22개 시군이 함께 운영하는 '경북 e누리' 온라인몰을 통해 주요 관광지, 숙박, 체험 상품을 10% 할인해 판매한다. 볼런투어(Voluntour) 캠페인도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1박2일동안 산불 피해지역에서 산림 정비와 마을 환경 개선 등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인근 주요 관광지를 탐방할 수 있다. 산불의 상처는 깊지만, 따뜻한 발걸음은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