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철우와 카터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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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19  |  수정 2025-05-19 07:57  |  발행일 2025-05-19 제23면
[월요칼럼] 이철우와 카터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고(故)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 노정(路程)은 가히 입지전적이다. 그는 조지아주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업인 땅콩 농장을 하며 지역 정치·경제에 눈을 떴다. 그러던 중 조지아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주지사를 거쳐 마침내 백악관에 입성했다. 대통령이 되기까진 결코 녹록지 않았다. "지미가 누구?(Jimmy Who?)" 1976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때 그의 전국적 인지도는 바닥이었다. 일천한 국내외 정치 경험과 남부 출신인 것도 약점이었다. 언론은 대놓고 '시골뜨기 땅콩 농사꾼'이라고 깔봤다. 하지만 그의 '아웃사이더(비주류)' '언더도그(상대적 약자)' 이미지는 뜻밖에도 표심을 사로 잡았다. 닳고 닳은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다.

그런 카터가 오버랩되는 인물을 최근 대선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서 지켜봤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그 역시 '언더도그'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끝내 국민적 인지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어떤 후보는 "몸집 불리기"라며 평가절하했다. 한 야박한 평론가는 이 도지사의 경주 APEC 구상을 두고 "장난치느냐"고 막말을 쏟아냈다. 일부 서울 언론은 산불 피해 수습과 관련한 이 도지사의 산림 개발 구상을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이 모두 지방(지자체장)을 무시하는, 시대착오적 사고(思考)가 아니고 무엇인가.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도 이 도지사는 '이철우표(標) 국정 비전과 철학'을 소신있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 칭했듯 '신무기'답게 '할 말은 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 도지사를 향한 폄훼는 그의 진심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가 산불 시국 속 일부 비판 여론에도 대선 출마를 한 것은 '도지사'로서 마주하는 한계와 절박감의 발로였다. 그는 APEC에 미·일·중·러 정상을 모두 참석시키고 북미 간 '빅딜'도 이끈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는 경북에서 처음 열리는 APEC을 '역대 최고, 평화의 APEC'으로 만들기 위한 간절함이다. 그의 산불 개발론도 단순한 복구를 넘어 재창조 수준의 복구라는 유의미한 취지를 담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 기왕이면 국가 수반이 되어서 추진하는 게 더 수월하고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본의도 모르고 "APEC이 장난이냐" "싸구려 개발 논리"라고 헐뜯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도지사를 처음 본 것은 30여 년 전 대구 한 구청 기자실에서 였다. 그 후 2005년 경북도 정무부지사 때와 도지사로 있는 지금 그에게서, 변함없이 느껴지는 인상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다. '그래여, 안 그래여'라는 김천 사투리가 주는, 시쳇말로 '츤데레' 포스도 풍겨진다. 이런 점에서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한 노무현 대통령과도 닮았다. 노 대통령의 투박한 사투리와 직설적 화법은 때론 논란이 됐지만, 솔직함이 묻어 있었다. 이 도지사 역시 가공되지 않은 표현으로 진심을 전하려는 스타일이다. 정치적 결은 다르지만 '지역균형발전이 우리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는 지론도 똑같다.

이 도지사는 '다음 번 대선'에 대한 도전 의지를 애써 숨기지 않는다. 지금부턴 본연의 도정(道政)은 물론 국가적 담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의 폭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영원한 '대세론'은 없듯, 그가 다음 번 대선에 출마한다면 어떤 '기적'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그의 정치 여정을 주목한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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