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안효찬의 돼지, 모순된 우리를 비추는 거울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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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8 06:00  |  발행일 2025-07-07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돼지와 아파트, 도무지 연결 짓기 힘든 두 가지 대상 사이에서 작가 안효찬은 동시대의 단면을 포착한다. 고층건물은 인간 문명과 욕망을, 돼지는 자연을 상징한다는 점은 이전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직접 밝힌 바 있다. 작품 앞에 가까이 다가서 뜯어볼수록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가의 섬세한 조형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만큼이나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한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반으로 댕강 잘려나간 돼지의 몸 때문만일까?


자연을 대변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 중 그가 동물, 그 중에서도 돼지를 선택해 작품 속에서 반복하여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안효찬의 작업에서 핵심 키워드로 기능하는 '돼지'의 상징성에 대해 보다 다양한 질문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돼지는 특히 다양한 상징들을 가진다. "돼지 꿈을 꾸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흔한 속설처럼 돼지는 오랜 시간 풍요와 행운의 이미지를 상징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음식을 먹고 살이 찌는 특성 때문에 욕망, 탐욕, 비만을 조롱하는 말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와도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일상적인 식재료로 소비되거나, 귀여운 캐릭터로 변모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돌이켜보니 '이만큼 다양하고도 상반된 상징이 압축되어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작품 속 돼지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여러 의미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인 '돼지'를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소비되는 자연 앞에서 느껴야 할 죄책감을 극대화하려는 작가의 치밀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돼지의 살점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도, 그 몸이 반으로 잘린 모습을 마주할 때 느끼는 죄책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돼지라는 상징이 가지는 양가적 의미를 통해 우리의 모순적 태도는 민낯을 드러낸다.


최근 작가는 전동 실린더, 포그머신 등을 활용해 작품에 동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관객의 몰입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정교한 조형적 디테일에 더해진 생생한 움직임은 관객을 축소된 작품 속 세계로 깊이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미묘한 불편함이 단순히 '잘린 돼지의 몸에서 비롯된 잔인한 광경'에만 기인하는 것일지, 다양한 해석을 향한 방향성을 열어두길 바라며, 제21회 장두건미술상을 수상한 안효찬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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