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값비싼 물건들 얻으려
배 침몰되기 기원하는 모습
보수 대통령 배출만 바라고
미래산업 제대로 준비 않는
대구경북 어리석음 똑 닮아
일본 소설가 요시무라 아키라의 '파선(破船) - 뱃님 오시는 날'은 일본 에도시대 작은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웃마을과도 뒷산을 넘어 며칠을 걸어가야 할 정도로 고립됐다. 척박한 땅에 조나 수수 등을 재배하지만, 그마저도 수확은 좋지 않다. 앞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나 소금을 이웃마을로 가져가서 농작물과 바꿔 오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 가족 중 누군가 고용하인으로 들어간다. 계약의 댓가로 받은 돈으로 남은 가족은 연명할 수 있다. 5년이나 10년도 걸리지만 모두 굶어 죽을 수 없어 선택한다. 주인공 이사쿠의 아버지도 3년 계약의 고용하인으로 떠났다.
마을사람들은 매년 초가을쯤에 '뱃님 방문 기원 의식'을 치른다. '뱃님 방문'은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뚫고 항해하는 화물선들이 암초가 많은 이 마을 앞바다에서 좌초되는 것을 말한다. 좌초된 화물선에서는 마을 주민이 몇년간 먹을 수 있는 흰쌀과 값비싼 화물까지 실려 있다. 단순히 좌초되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겨울밤 내내 돌아가며 소금을 굽는다. 풍랑에 휩쓸린 화물선들이 마을의 화롯불을 보고 암초가 있는 마을쪽으로 오면서 좌초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인 구미에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대기업을 유치했다. 포항제철소도 설립했다. 이사쿠가 처음 목격한 좌초된 배에서 320섬의 쌀이 나온 것처럼, 대구경북은 풍요로웠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이 쌀밥에 맛을 들이고 '뱃님 방문'이라는 요행에만 기댄 것처럼, 대구경북도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의 변신에 늦었다. 쌀이 빈 쌀독과 같은 처지가 됐다. 보수 대통령을 배출하면 산단 지정이나 대기업 유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단순한 기원과 요행에 기댈 뿐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시절처럼 이것 저것 모두 챙겨주는 호시절은 없었다. 소설에서 번(에도시대 각 지역의 영주가 다스리던 땅)이 운영하는 배가 좌초됐을 때는 배에서 무엇하나 얻지 못하는 것처럼.
마을사람들은 다시 좌초한 뱃님을 맞는다. 배에는 쌀이나 값비싼 물품이 없고 숨진 사람들 뿐이다. 숨진 사람들이 입고 있던 비싸고 화려한 옷감이라도 차지하려고, 시체에서 벗겨온 옷을 마을사람들이 나눠 가진다. 숨진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린 시체였고, 천연두가 마을을 폭풍처럼 휩쓴다. 많은 사람들이 숨지고 목숨을 건졌더라도 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재앙을 부른 책임을 통감한 마을 촌장과 부촌장은 스스로 마을을 떠나거나 목숨을 던진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정서적 차이와 100년 이상 떨어진 시간의 거리가 있지만, 파선에 등장하는 어촌마을과 대구경북은 닮았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제 살 깎아먹는 척박한 경제환경에서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지로 고용하인처럼 떠난다. 소설에서 고용하인으로 떠난 젊은 여자들이 가난이 싫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대구경북 청년들도 돌아오고 싶어도 미래가 없는 대구경북에 다시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소설과 현실의 대구경북이 다른 점은 리더의 차이다. 소설에서는 촌장과 부촌장이 목숨을 끊거나 마을을 떠나면서 책임을 진다. 수십년 동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구경북에서는 "내 책임이요!"하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보수 대통령 배출이라는 요행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과 거기에 기대어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들뿐이다.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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