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기억을 잃는 일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이는 한 사람의 삶을 흔들고, 가족과 사회에도 부담을 남긴다. 경도인지장애, 치매 등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모두가 대비해야 할 현실이 되었다. 실제로 WHO와 영국 정부는 문화예술 참여가 우울과 인지 저하를 줄이고 사회적 비용 절감에도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만큼 노화와 인지 건강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고 있다.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특히 뇌의 노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의외로 그 중심에 예술이 있다.
예술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의 섬세한 손놀림은 소근육을 단련하고, 색과 형태를 고민하는 과정은 뇌의 연결망을 새롭게 엮는다. 노래나 악기 연주는 호흡과 심장을 단련해 신체 회복력을 높인다. 발레 같은 무용은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기르고 전신 근육을 고르게 써 신체 노화를 늦춘다. 무대 위 움직임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감정을 풀고 자신감을 되찾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저속노화에는 영양과 운동 못지않게 인지 능력 향상이 중요하다. 뇌가 자극받을 때 신경세포의 연결은 더 튼튼해지고,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된다. 단순한 기억 훈련을 넘어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예술이 바로 그 자극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예술은 정서적 회복력을 키운다.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 관계의 축소는 노화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그러나 그림 앞에 서거나 합창단에서 목소리를 모으고, 발레 수업에서 몸을 뻗어 올릴 때 우리는 '아직 살아 있구나'라는 감각을 되찾는다. 이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고, 결국 세포 노화의 속도를 완만하게 한다. 이러한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많다. 음악은 해마와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고, 무용은 균형과 기억력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성인이 6개월간 발레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균형 능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예술 활동이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인지 건강을 지키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전문 화가나 무용수가 될 필요는 없다. 가까운 전시를 찾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발레 기본 동작처럼 몸을 곧게 펴며 리듬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예술과 능동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을 꾸준히 삶에 불어넣는 일이다.
노화는 멈출 수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예술은 우리 몸과 마음의 시계를 잠시 늦추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지 모른다. 이번 글에서는 큰 흐름을 짚었고, 이후는 발레를 비롯해 무용·음악·미술이 어떻게 저속노화와 인지 건강에 기여하는지를 더 깊이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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