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협상 타결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을 찾았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별다른 성과 없이 귀국했다. 김 장관은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두 차례 회동을 했지만, 대미 투자 구조와 이익 배분 방식 등 쟁점 사항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의가 장기간 공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이 '일본과의 합의 수준'으로 서명할 것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사실상 '투자 백지수표'를 강요하는 형국이다. 트럼프가 투자처를 지정하면 기한 내에 자금을 대야 하고, 투자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요구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독소적 조항이다. 우리 정부가 약속했던 대미 투자분 3천500억 달러는 외환 보유액의 85%에 달한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트럼프 임기 내에 투자한다면 환율 변동에 민감한 구조를 지닌 우리 경제는 자칫 심각한 불안에 휩싸일 수 있다. 일본은 준기축 통화국인데다,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도 체결했기에 외화 유출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일방통행식 요구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인 점은 지극히 타당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는 쫓기듯 협상하기 보다는 전체 국익 관점에서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직접투자 비중을 줄이고, '통화스와프'라는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등 대외변동성을 낮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우리 국민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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