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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돌려주세요
노인 보호구역 고작 59곳...대구시 "고령층 보호 위해 최대한 확대 노력"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보행자들은 운전자들의 배려와 안전한 보행 환경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교통 약자다. 이들을 위해 지난 2008년부터 보호구역 지정이 시작됐지만 지정부터 관리까지 각기 다른 규정 적용으로 노약자의 보행 안전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며 노인보호구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호구역 지정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보행 환경 관리가 절실하다.◆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6명은 고령층16일 오전 9시50분쯤 대구 동구시장 앞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아침부터 시장을 방문한 어르신 수십 명이 오가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한 70대 여성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양 옆으로 오는 차를 살폈지만, 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심히 도로를 지나갔다. 어르신은 그 다음 차량에 손을 들어 '멈춰 달라'는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횡단하는 차량들 사이, 아슬아슬하게 보도를 건넜다. 차량이 멈춰서면 움직였고,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길 중간에 멈춰섰다. 가까스로 횡단보도를 건너온 전모(여·72)씨는 "여기에서 조금 올라가면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가 있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언제 거기까지 가겠느냐"라며 "이젠 적응이 돼서 크게 불편함은 없지만 늘 위험한 것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대구지역 보행자 사망자(124명) 중 63.7%(79명)는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고령층 왕래가 잦은 도로엔 보행자 보호 조치가 강화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노인보호구역' 지정은 물론 통행을 관리하는 도우미조차 없는 상황이다. 전통시장 앞 보행로는 고령층 왕래가 잦음에도 불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법규상의 문제 때문이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차량 시속 30㎞ 제한과 주·정차가 금지돼 좀 더 안전한 보행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도로교통법상 보호구역은 어린이·노인·장애인 관련 시설(학교·노인복지시설·장애인복지시설)이 위치한 인근 도로에 한해 지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시장·병원 앞 보행로는 보호구역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보호구역 중에서도 '노인보호구역'의 수는 현저히 적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역마다 학교가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은 총 752곳까지 확대 됐지만 상대적으로 시설 수가 적은 노인 보호구역은 고작 59곳에 그치고 있다.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지자체 조례에 따라 실제 교통약자의 통행량이 많은 곳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한 것. 대구시는 상위법 개정에 맞춰 다음달 조례를 제정해 올해 노인보호구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통시장·병원 수를 고려한 '노인보호구역' 지정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대구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통행량이 많다고 무조건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순 없지만 기초지자체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고령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교통안전 시설 확충도 시급 '안전운전 5030' 정책에 따라 보호구역뿐 아니라 이면도로에서도 차량 시속 30㎞ 제한이 적용된다. 특히 보호구역은 인도 등의 교통안전 시설을 확충해 특별히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16일 오전 8시30분쯤 대구 동구 율하초등 앞. 이곳은 학교를 둘러싸고 모두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정문 인근 도로 약 100m 지점엔 인도가 아예 없고, 성인 무릎까지 오는 낮은 펜스가 30㎝ 간격으로 듬성듬성 설치돼 있다. 인도로 사용되는 도로도 폭이 좁아 어린이 2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여서 친구들과 등교하는 아이들 상당수가 차도로 보행했다.이처럼 '보호구역'임에도 교통안전 시설이 확충되지 않는 것은 전체 도로가 좁아 최소 인도 폭인 1.5m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시방편으로 막은 펜스도 제 역할을 못해 인도를 확보하기 위해선 학교 부지를 활용해야 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여전히 위험한 보행 환경에 학부모들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둔 권모(여·40)씨는 "운전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펜스 밖으로 튀어 나온다. 위험할까 싶어 집에서 멀지 않아도 차로 직접 아이를 통학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전문가들은 보호구역 지정을 할 땐, 실질적인 안전시설 확보와 보호 구역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도로교통공단 박무혁 교수는 "보호구역이란 안전 시설을 확보해 특별히 보호하는 지정 구역을 말하는데, 보도도 없는 곳에 '스쿨존'을 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인도 확충의 문제 또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했다"며 "지자체 내부 심의위원회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확실하게 안전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人道를 돌려주세요 자문위원△윤대식 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신진기 계명대 교수(교통공학전공) △김수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교수16일 오전 대구 동구시장 앞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한 어르신이 차를 향해 멈춰 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대구 동구 율하초등 정문 앞.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2022.06.16
영남일보 연중 캠페인 '人道를 돌려주세요'…<1>20년 방치 인도 침범 횡단보도
7일 오전 9시50분쯤 대구 동구청 건너편 횡단보도엔 동구청쪽으로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 4명이 서 있었다. 신호를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갑자기 '빵'하는 클락션에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뒤편 내리막 길에서 엉뚱하게 차량이 내려오고 있었다. 보행자들은 옆으로 비켜 설 수밖에 없었다. 차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우회전 해 대로변 차선으로 들어섰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라 운전자는 횡단보도 신호가 적색일 때 우회전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횡단보도 앞 보행자가 대기하고 있을 땐 일시 정지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 차량들은 이면도로인 내리막길에서부터 보행자를 향해 클락션을 울렸고, 우회전하기 위해 횡단보도 앞 대기하는 보행자를 향해서도 아예 비켜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생긴 200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보행자를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강모(여·53·대구 동구)씨는 "작은 손수래를 끌고 가는 할머니가 내리막길에서 횡단보도까지 내려오는 데 '빵'하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를 듣고 가장자리로 비켜서는 모습이 한 두번이 아니다"며 "그럴 때면 사고라도 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도심 곳곳에 산재한 '아슬아슬한' 보행 환경은 교통사고 유발지역이 된다.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SS)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3~4명이 보행 중 사망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 중 보행자 사망자 비율이 40.5%로, 전국(33.5%) 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올해부턴 '보행자 보호 의무'가 강화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돼 보행자를 위협하는 이 같은 차량들이 단속 대상이 된다. 한국교통연구원 우승국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거의 이면도로 일대 사고"라며 "사람이 차량이 아닌, 차량이 사람을 조심하도록 한다면 이면도로 교통사고 감소와 함께 보행자 사망율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남일보는 사람보다 차량이 우선 시 돼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보행자 교통사고 방지와 보행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캠페인 '人道(인도)를 돌려 주세요'를 연중 전재한다. 보다 친인간적인 보행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 자문위원단도 구성해 운영한다. 자문단인 △윤대식 영남대 명예교수(도시공학과) △신진기 계명대 교수(교통공학전공) △김수진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교수는 앞으로 보다 안전한 보행환경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한다.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7일 오후 대구 동구청 앞 횡단보도에서 차량이 보행자들과 함께 횡단보도로 진입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22.06.09
"중앙선 없는 이면도로 보행자에 차량이 클랙슨 울리면 위협운전 간주 가능성"
올 4월 도로교통법 개정에도 보행자들 비켜서기 여전해7월엔 보행자 우선도로 시행...대구시, 지역 4곳 시범사업속도제한 당위성 이해하도록 운전자 대상 대대적 홍보필요 올해부터 보행자의 '통행 우선권'과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가 강화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다. 이는 차량 중심의 교통 페러다임을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중앙선 없는 이면도로 보행자 통행 우선권7일 오후 3시쯤 대구 중구 한 주택가 이면도로. 건물들이 마주 보고 있는 골목길은 불법 주정차한 차량으로 가득했다. 가뜩이나 비좁아 통행에 불편을 겪는데 차체 큰 SUV 차량이 다가오자 시민 두 명이 빠른 속도로 길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이 차량은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유유히 골목을 빠져 나갔다.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지난 4월20일부터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선 보행자가 길 가장자리가 아닌 모든 구역에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과거의 교통문화에 익숙한 모습이다. 행인 정모(여·54·대구 중구)씨는 "차가 오면 사람이 비켜야 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길 중간으로 다녀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며 "길 중간으로 다니면 차량이 뒤에서 클락션을 울릴 것 같은 공포가 있다"고 했다. 실제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보행자들은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선 길 가장자리로 통행해야만 했다. 이에 보행자들은 차량이 뒤에서 따라붙지 않을까 늘 조심해야 했고 운전자들은 빠른 속도로 주행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하지만 도로교통법이 새로 개정되면서 운전자들은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서 보행자가 있으면 무조건 서행하거나 일시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가 길을 비켜서지 않는다고 클락션을 울리는 등의 행위는 위협운전으로 간주될 가능성도 있다. 만일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승용차 기준 범칙금 4만원이 부과된다.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엔 공감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택시기사 최모(66·대구 북구)씨는 "앞에 사람이 있으면 인기척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긴 하지만 클락션을 누른 적도 많다"며 "아무래도 손님을 태우면서 습관이 된 것 같다.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시간이 걸릴 듯하다"고 했다. 이에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관할 경찰서에서 캠코더 단속, 순찰 등으로 단속과 홍보를 병행하고 있지만 시행된 지 얼마 안 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유관기관과 협력해 공익방송 송출, 카드뉴스 제작, 최근 사례 활용한 교육, 홍보 현수막 게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폭 10m 미만 경우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7월12일부터는 보행안전법·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른 '보행자 우선도로'도 지정될 예정이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보행자와 차량이 이용하는 폭 10m 미만 도로로, 필요 시 지자체가 보행자 우선도로엔 시속 20㎞ 속도 제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4월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서 시행된 보행자 통행 우선권보다 보행자 보호 의무가 더욱 강화된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각 지자체가 선정할 수 있다. 대구시는 2012년부터 진행 중인 '안전한 보행 환경 개선 사업' 대상 지역 4곳(북구 태전동, 달서구 두류·용산동, 수성구 수성동1가 일대 이면도로)을 먼저 보행자 우선도로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대구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이번에 지정된 도로들은 일종의 시범사업이다. 각 구·군과 협의해 보행자 우선도로를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인도를 설치하기엔 좁지만 보행량이 많은 지역 등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해 인도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각 구·군으로부터 도로 실태조사 결과를 받은 상태"라고 했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특히 폭이 좁은 주택가, 통학로, 상가지구 등에서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행정안전부가 2019년 전국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 6개소를 설치해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안전성·편리성·쾌적성 측면에서 주민 만족도가 평균 5.55~5.6점에서 7.9~8.17점으로 높아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 우선도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도로환경 정비와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홍다희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보행자 관련 명칭들이 많아서 노면 표시도 혼재돼 있다. 우선 운전자들이 보행자 우선도로가 무엇인지, 어디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도로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운전자가 실수해서 40㎞로 속도를 높여도 20㎞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운전자 포용도로' 등 도로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제한속도 20㎞라는 속도가 굉장히 낮기에 속도 제한에 대한 당위성을 알려야 한다. 보행자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운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7일 오후 대구 동구 한 이면도로에서 보행자가 차량이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선 채 기다리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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