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사회 > 문순태의 '철쭉제'

  • 입력 1997-07-25 00:00  |  발행일 1997-07-25

문순태는 1941년 전남 담양군 남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여 1958년 광주고
등학교에 입학, 시인 이성부와 교제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60년 농촌
중보(전남매일의 전신) 신춘문예에 단편 '소나기' 당선되었고 1961년 전남
대 철학과 입학 이후 숭실대 편입, 다시 조선대 국문과 편입하여 졸업했다.

당시 시인 조태일 등과 김현승 선생댁을 자주 찾아다니면서 문학공부를
하였고 1965년 "현대문학" 에 시 '천재들' 이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고교 교사에서 전남매일신문사 기자로 옮겨 이후 16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1973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백제의 미소' 가 당선하여 소설가가 되었
으며 송기숙 한승원과 동인지 "소설문학" 발간하기도 했다. 1977년 첫 창
작집 "고향으로 가는 바람" (창작과 비평사) 발간 이후 "흑산도 갈매기"
"걸어서 하늘 까지" "타오르는 강" 등 다수 펴냈다. 1981년 '말하는 돌'로
소설문학 작품상을 수상했고 전남문학상과 전남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
다. 순천대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쭉제'는 1981년 "한국문학" 6월호에 발표된 중편으로 한의 문제를 계
층간의 갈등의 문제로 파악하여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우선 작품의 줄거
리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문순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체구성은 첫
째 날 부터 여섯째날 까지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내용을 기술한,즉 시
간의 흐름에 따라 줄거리를 서술한 일종의 연대기적 방식을 취하면서 이야
기를 이끌고 있다.

우선 첫 날 주인공 '나'는 폐허가 된 마당의 쑥대밭 속을 서성거리며 30
년 전의 우리집 머슴이던 박판돌(朴判乭)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의 주인공
의 심리 상태가 이 소설의 내용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나는 박판돌이가 내 앞에 나타날 시간이 가까워 질 수록 초조하고 불
안했다. 이만큼이나 출세하여 생사여탈을 쥐고 편다는 내가, 지금은 비록
구례의 지역 사회에서 제법 말자리께나 하며 떵떵거리며 산다지만, 한갓
옛 머슴에 불과했던 그를 닥달함이 되려 모기한테 칼 빼는 것 만큼이나 여
들없게 생각되어지기도 했는데 이제와서 그가 두려워 지는 것은 무슨 까닭
인가. '똥은 말라도 구리고 북은 칠수록 소리가 난다고 이제 와서 네 아버
지원수를 갚으면 멋할 긋이냐! 판돌이 놈은 등치고 간 내먹을 놈이니께,제
풀에 꺽이도록 냅더라?'문득 어머니의 말이 생각 났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30년만에 찾아온 고향 집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하이칼라 머리에 학처럼 우아하던 멋장이 아버지가 머슴 박
판돌에게 날카로운 긴 대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면서 어디론지 끌려가는 모
습이 떠올랐다.

현재 시점으로 주인공 나는 (굶주리고 신문팔이 고생하며 복수의 일념으
로 절치부심) 고등고시에 합격한 '검사' 이고 박판돌은 불법골재채취와 지
리산의 철쭉을 무단 채취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일 등으로 돈을 모아 구례
읍내에서 유지 행세를 하면서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아야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다. 고향 말도말
아라. 네가 고등고시 합격해서 검사가 된 것이 박판돌에게 뼈아픈 복수가
되었다" 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여코 30년만에 고향에 찾
아와 박판돌을 만나고 아버지의 시신이 묻힌 곳을 묻는다.

둘째날, 나는 판돌을 앞세우고 아버지의 유골을 찾기 위해 세석평전을
향한다. 일행은 모두 여섯명으로 나 박판돌 지관과 인부 두 사람 그밖에
여자가 하나 따랐다. 젊은 여자로 박판돌이 데리고 온 스물 대엿 되는 미
스 현이란 이름의 술집 접대부나 다방 종업원같아 보인 여자였다.

지금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알록달록한 남방을 입고 젊은 여자와 히히덕
거리는 뱀눈의 박판돌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도련님이라 부르며 업어주
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세째날, 넷째날 계속되는 산행을 하면서 나는 텐트 속에서 박판돌의 모
습에 가위 눌리기도 하고 또 미스 현과 박판돌의 정사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며 나 역시 그 미스 현과 정사를 나누는 등의 심신이 파행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끊임 없이 박판돌에게 아버지를 살해한 까닭
을 묻고 박판돌은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다섯째날 우리 일행은 드디어 세석평전에 도착, 잠시 철쭉제에 참여한
후 나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다. 그런데 동행한 지관의 말로는 아버지의
시신이 묻힌 곳이 칠선봉을 뒤로하고 좌청룡 우백호가 정확한 명당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시신은 철쭉의 뿌리들이 마치 관처럼 휘감아 싸고 있어
서 뼈가 희게 잘 썩어있었다. 아버지의 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구두, 아버지를 칭칭 동여매었던 전선줄이 발견될 때 회한에 찬 내가 박판
돌을 찾지만 조금 전 아버지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찾아주던 박판돌이 갑
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해 가지고 되돌아 오는 길에 나는 함길만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에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는 세속에서 국회의원 출마 등 온갖 협잡을 다 해본 사람인데 모든게 덧
없어 욕심을 버리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목숨이라며 한 줄기 바람에 의
지해 살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나는 복수의 일념에 불탔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지리산 보다 몇 천배나 더 크고 경이로운 '존재' 에 대
해서 생각한다. 하산하는 길에 어둠속에서 박판돌을 다시 만난다. 그는 아
버지가 자신에게 "잘못했으니 용서 해달라고 했다" 는 말을 전하면서 그
동안 내가 몰랐던 집안의 내력을 밝힌다.

박판돌의 아버지 박쇠는 나의 할아버지인 박참봉댁의 종이다. 그는 면천
했지만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자청해서 다시 박참봉집에서 머슴을 산
다. 박쇠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머슴이다. 나이 스물 여섯에 열아홉 부엌데
기인 넙순이와 결혼한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데 그가 박판돌인 셈이다.

참봉의 아들은 지리산 일대에서 포수로 명성이 자자한데 그가 바로 검사
인 나의 아버지 박인동이다. 박포수는 사냥 갈때마다 박쇠를 동행한다. 나
는 싫지만 매번 따라나선다. 한번은 사냥을 가던 중 불길한 일을 당하여
예상없이 귀가한다. 아내 넙순이를 놀래줄 심사로 몰래 담을 넘어 방에 들
어가니 사내가 한 명 아내와 동침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박쇠는 낫으로 아내를 찍어 팔을 하나 자르고 상처를 입히
지만 상대가 박참봉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결혼 전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도
박쇠가 사냥 따라 나간 날이면 어김없이 박참봉의 방문을 받았다는 사실도
고백 받는다.

이 일이 기화가 되어 박쇠는 자신과 아들을 박씨 족보에 올리게 된다.
어느날 참봉 아들의 사냥에 동행한 박쇠는 돌아오지 않는다. 멧되지에게
물려죽었다고 하기도 했다. 이 일 때문에 박쇠 처는 미쳐 헤매다가 판돌이
열 한살 되던 여름 박쇠 처는 염병으로 죽는다. 죽으면서 그녀는 종문서
와 족보 이야기 등 한 맺힌 이야기와 분명 참봉 아들이 죽여서 지리산 어
디엔가 묻었을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라고 당부한다. 6.25가 일어나고 세상
이 뒤바뀐다.

그래서 나는 박참봉 아들에게 종문서와 족보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
해 물어본다. 자라나면서 두 어른의 도움을 받은 사실 때문에 마음속으로
는 참봉 아들이 아버지(박쇠)를 죽이지 않았다고 고백하기를 내심 바라
면서 물어보지만 대답은 자신이 엽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말한다. 그 까닭
은 박쇠가 낫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찍어 죽일 것 같고 또 종이 자기 집안
의 족보에 오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판돌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혹시 아버지(박쇠)의 유해라도 찾을수 있을
까 해서 참봉 아들을 지리산으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골을 찾았나요" 하고 내가 묻자 박판돌은 못찾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
로 우리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당신인가요 하고 물을려다가 나는 결국 묻
지 못하고 만다.

나는 무거운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에 잠긴다. 그리고 지리산 골
짜기에 떠도는 박쇠의 원혼과 그런 아버지의 원혼을 달랠 길 없어 괴로워
하는 박판돌에게 죽은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빌고 싶었다. 여섯째날 구례로
돌아오는 버스간에서 나는 불쑥 "판돌씨 내년 철쭉제때 다시 만납시다. 그
리고 미안합니다. 아버지 대신 제가 사과하지요" 하고 말한다.

갑자기 덩치 큰 지리산이 가슴 뻐근하게 와 안기는 듯 했다. 결국 이작
품은 원한과 복수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통해 계급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
는데 그 화해의 매개체는 우뚝서서 존재의 경이를 깨닫게 하는 지리산의
철쭉제라 할 수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