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18년 .6] 우용득 감독

  • 입력 1999-03-13 00:00

우승에 목말라 있던 삼성은 결국 또 한번의 변화를 선택했다. 삼성은 젊 은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 김성근 감독을 퇴진시키고, 대구.경북야구의 큰 줄기를 이어왔던 창단멤버 우용득씨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당시 43세로 프로야구 최연소 사령탑에 오른 우 감독은 난파위기의 삼성 호 선장으로서, 세대교체와 성적향상이라는 큰 짐을 지게 됐다. 우 감독은 자연스런 세대교체 실패로 역대 최악의 전력을 보이고 있던 삼성에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뛰는 야구'와 '공격 야구'를 도입, 팀에 활력을 불러 넣었다. 대구상고 포수출신인 우 감독의 전략은 부임 첫해 의외로 성공을 거두었 다. 삼성은 약체라는 불명예를 씻고 93년 73승48패5무(승률 0.599)를 기록, 85년 이후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은 한국시 리즈에서 해태에게 2승1무4패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90년대 들어 최 고의 성적을 올렸다. 삼성은 그러나 이듬해부터 또다시 '최고병'이 도져 94년 팀창단 이후 최 악의 성적인 5위로 추락한 뒤, 95년에도 4위에 그쳤다. 간판급 선수들의 부상도 겹쳤지만, 개인주의가 선수단에 전염되면서 팀분위기가 모래알처럼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 우 감독도 역대 감독중 2번째로 3년 임기는 채 웠으나,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채 성적부진의 희 생물이 됐다. 우 감독은 그러나 선수단의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이끌어 냈 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구팬들로부터 인기를 얻는데는 성공했다. 우 감독의 화끈한 공격야구가 성적을 떠나 팬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93 년 대구구장은 최초로 50만명의 관중을 돌파한 이후 95년에는 62만3천명을 기록, 역대 최고관중 기록을 세웠다. 우 감독 재임시 지금도 각팀에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 이 입단했다. 김태한, 동봉철, 박충식, 양준혁, 김한수, 김태균, 최익성, 김실 등이 새로 사자 유니폼을 입었다. 93년 한국시리즈에서 1승을 올린 김태한은 그해 14승6패2세이브(방어율 2.83)로 박충식과 더불어 팀내 최다 승 투수가 됐고, 95년엔 세이브투수로 변신해 5승8패22세이브를 기록했다. 라이언킹 박충식도 93, 94년 연속 14승을 거두며 김태한, 김상엽과 더불 어 삼두마차를 형성했다. 특히 박충식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로 나 와 선동열과 문희수가 이어 던진 해태를 상대로 15이닝을 완투하며 2-2 무 승부를 기록하는 명승부를 남겼다. 입단 첫해(93년) 3할4푼1리의 타율로 수위타자를 차지한 양준혁은 삼성 선수중 최초로 신인왕에 올랐고, 93년 홈런왕(홈런 28개) 김성래는 MVP를 차지해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한 팀에서 동시에 MVP와 신인왕을 배출 한 것은 85년 해태에 이어 두번째 경사였다. <최영호기자 cy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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